파도가 도리질을 해대며 햇살을 퉁겨내는 통에 눈을 뜰 수 없다. 실털구름이라도 햇살을 잠시 붙들어주면 바다는 와락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맑고 파랗다. 바닷속 모래톱에 나무를 박아 만들어놓은 '나무그물'. 인터넷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산과 들을 파헤치고 이제 바다마저도 가만두지 못하는 판에 창선도 앞바다에서는 아직도 원시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는다.
#남해 창선도
창선도는 남해도의 그늘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섬마을이다. 남해와 연륙교로 이어진 섬 아닌 섬. 30여개 마을에 8,000여명이 살아가는 꽤 큰 섬이다.
마산에서 남해로 가는 길. 멀리 에돌아가는 것보다 배를 타고 가는 게 빠를까 싶어 삼천포에서 철부선을 탔다. 지도에는 사천 앞바다와 창선도 앞바다를 동그랗게 묶어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그려놓았다. 창선도까지는 불과 10분. 그 짧은 시간에 올망졸망한 섬들이 자꾸 스쳐간다.
섬과 고깃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바다를 건너면 창선도 단항포구. 20~30분에 한대씩 배가 오가는 포구지만 터미널 하나 따로 없다. 배 떠나는 시간이 적혀있는 구멍가게 하나만 덜렁 있을 뿐 선술집조차 찾기 힘든 부둣가. 30여척의 소형 어선들이 출어채비를 하고 있다. 남해의 미조항처럼 깔끔하지 않지만 수수한 것이 왠지 정감이 간다.
단항이라는 이름은 부두를 껴안고 있는 삼학산에서 유래됐다. 학이 날아오르는 것 같은 산세. 학의 목에 붉은 깃털이 띠를 두르고 있어 붉은 단(丹), 목 항(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창선도는 해변과 멀찌감치 떨어져 도로가 놓여있다. 길 아래로는 따가워진 봄볕에 훌쩍 자란 마늘밭. 구불구불 푸른 밭고랑이 마치 바닷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단항마을 들판에는 거목이 솟아 있다. 수령 500년 묵은 왕후박나무. 둥그스름하게 가지를 땅에 드리웠다. 가지 하나 상하지 않고 어떻게 500년 풍파를 버텨왔을까. 후박 나무 하나에서도 창선도의 넉넉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도둑이 없고 인심이 좋은 탓에 창선도 마을의 옛이름에도 빠짐없이 선(善)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다. 상선현, 영선현, 흥선현…. 창선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조선때이다. 고려때는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해 말을 키웠던 섬이다.
#죽방렴
남해도로 이어지는 창선대교. 창선도와 남해도가 길다랗게 마주보고 있는 지족해협에 촘촘하게 박아놓은 죽방렴이 눈에 들어온다. 통통배를 타고 물때에 맞춰 죽방렴을 들여다보는 어부들이 바지런히 고기를 건져내고 있다.
죽방렴은 부채꼴 모양으로 나무말뚝을 쳐놓으면 고기들이 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나무그물. 서해안의 돌그물과 함께 가장 원시적인 고기잡기 방법이다. 안쪽에 참나무 말뚝을 둥그렇게 박은 다음 촘촘하게 대나무 발을 쳐서 '불통'을 만든다. 불통 앞에는 들물 때 열렸다가 날물 때 빠져나가는 문짝도 달려있다. 한번 들어간 고기는 빠져나갈 수 없다. 어릴 적 강변에서 된장을 발라 피라미를 잡았던 어항과 같은 원리이다. 죽방렴은 모두 20여개. 부챗살 나무막은 길이가 80ｍ가 넘는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원찮아 봬도 이게 무지 과학적인 거라예. 옛날 어른들은 문어와 홍어까지 잡았다고 합니더. 한창 때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멸치도 많았지예. 요즘은 옛날 같지는 않심니더"
창선도 앞 지족해협은 죽방렴을 설치하기 딱 좋은 자리다. 말뚝을 쉽게 박을 수 있게 수심이 깊지 않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빨라 고기들이 나무그물 속에 몰려든다.
죽방렴을 설치하는 것은 대개 3~4월부터. 참나무를 쓰는 것은 다른 나무에 비해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가 귀한 탓에 요즘에는 아예 쇠기둥을 박아놓은 곳도 있다. 11월까지 고기를 잡고 겨울에는 부챗살 나무기둥은 그냥두고 불통만 빼놓는다. 갈치, 조기, 보리새우, 한치, 장어, 학공치, 도다리, 광어, 숭어, 갑오징어, 방어, 감성돔 등 잡히는 어종은 다양하다. 예전에는 갈치와 조기가 주된 수입원이었지만 근자에는 멸치가 주종이다. 특히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 멸치보다 훨씬 값이 비싸다. 비늘 하나 상하지 않고 고스란히 건져올리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봄물결이 더욱 파래진 창선도. 나무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도 바빠졌다. 그물 속에 담가놓은 옛날 바다. 그 속에 정겨운 추억과 역사가 있다.
▲여행길잡이
남해고속도로~곤양 IC~진교 교차로~1002번 지방도~노량교차로~남해대교. 남해대교를 건너 1024번 지방도를 타면 서쪽해안을 둘러볼 수 있다. 남면에는 해안도로가 3번 국도로 이어진다. 항공편은 사천공항을 이용하면 빠르다. 삼천포항에서 남해 창선도까지는 30분 간격으로 배가 다닌다. 남해 공용여객터미널 (0594)864－7102.
남해에는 여관이 많지 않다. 버스터미널 6층에 여관이 깔끔하고 주차장까지 갖췄다. 해변쪽으로는 상주해수욕장(번영회 863－3573), 송정해수욕장(번영회 867－7291), 사촌해수욕장(862－7656), 물건리(867－7279) 등이 있다. 충렬사 근처 한려관광농원(863－0678)에는 방갈로가 있다.
남해에는 맛집이 별로 없다. 남해대교 아래 노량횟집촌이나 남해읍에서 5분 거리인 선소에 횟집들이 몰려있다. 모듬회가 보통 3만원대부터 있다. 선소횟집 863－0707.
남해를 표현할 때 흔히 '삼무삼자'라고 한다. 삼무는 도둑, 거지, 문맹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한 남해사람들을 치켜세우는 뜻이고, 삼자란 유자와 치자, 비자가 많이 난다는 뜻이다. 마늘도 유명하다. 남산면 평산리에는 유자주 양조장이 있다. 863－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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