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보고서, 제주 자긍심 갖게 할 것. 대통령 사과, 금년 위령제 참석 바래"
[인터뷰] 박찬식 4.3위원회 전문위원 / 이성찬 유족회장



▲ 4.3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된 29일 오후 제주시내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 참석자들이 4.3사건과 관련한 피켓을 들고 나와 "4.3정신 계승"을 강조했다.  
 
제주 4.3사건 발발 55년만에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오자 보수언론과 일부 수구세력들은 '음해' 내지 진상규명의 의미를 축소하면서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몇몇 보수단체에서는 신문광고를 통해 '남로당 지시에 의한 무장폭동'이라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정부차원의 4.3사건 진상규명 보고서가 채택된 29일 오후, '4.3조사단'의 전문위원으로서 보고서 작성의 기초를 맡았던 박찬식 제주대 강사와 4.3유족회 이성찬 회장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들었다.

박찬식 전문위원은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들은 이번 보고서의 '의미 깎아내리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5.10선거 당시 단독정부 수립을 유일하게 반대했던 지역이 제주도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것'이라 깎아 내린다. 하지만 이런 저항도 막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국가라 할 수 있는가. 군인과 경찰,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만이 나라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성찬 회장은 "보수기득권 세력들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보고서 통과에 훼방을 놓고 있다. 신문에 광고까지 내고, 몇몇 신문들은 뻔히 드러난 사실까지 왜곡하는 내용의 기사까지 쓰고 있다. 기득권 세력이 그렇게 나오는 것은 자기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4.3특별법 제정 2년6개월만에 보고서가 나오고, 이를 정부가 채택하자 제주도는 '들뜬' 분위기다. 닷새 뒤에 있을 위령제 때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할 것을 바라고 있다. 4.3사건 관련 단체뿐만 아니라 민주노총도 대통령의 위령제 참가와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4.3위원회는 '4.3조사단'에서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건의하자 이를 정부차원에서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 민주노총은 29일 오후 제주 관덕정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55돌을 맞는 4.3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위령제 때 대통령의 참석과 사과를 요구했다. 

4.3 진상보고서, 어떤 내용 담고 있나?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승만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내용과 함께 미국측 정보자료를 통해 '대량학살' 등의 기록도 처음 공개됐다.

29일 열린 4.3위원회 회의에는 고건 총리를 비롯해, 강금실 법무장관과 김두관 행자장관, 성광원 법제처장, 우근민 제주도지사 등 당연직 8명과 강만길 상지대 총장, 김삼웅 전 대한매일 주필 등 위촉직 12명이 참석했다.

4.3위원회는 4.3사건의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 전면개방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4.3위원회는 또 행방불명자 등 신고 희생자수 1만4028명을 비롯해, 각종 자료와 인구 통계 등을 감안해 인명피해 규모를 2만5000명 내지 3만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당시 전체 제주도민의 10%에 이르는 규모다. 진상조사 결과 공개적인 재판절차도 없이 즉결처분을 감행했으며, 한꺼번에 400명이 집단학살 당한 경우도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 뒤 열린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또 당시 한국군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었던 미군의 정보기록에 의하면 이들을 '빨갱이'로 규정, '대량학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승만, "강경 진압하라"

4.3사건은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제주도라는 좁은 지역에서 3만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 당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이후 제주도민들의 투쟁 끝에 3년전 '4.3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진상보고서는 1차 성과인 셈이다. 이번 보고서는 제주도의회와 <제민일보>를 비롯한 언론사, 여러 연구소, 시민사회단체의 노력 덕분에 나왔다.

4.3사건은 미 군사고문단이 통치하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역대 정권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역대정권은 정부수립 과정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진상규명은커녕 오히려 정부가 덮어버리려 했으며, 또 희생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공론화 자체를 막았다.

4.3사건의 발생원인과 관련, 보고서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족적 정서가 강했고, 자주적인 민주공화국가 건설을 바랐던 시기였으며, 분단은 생각하지 않았는데 38선이 생기고 신탁통치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보고 있다.

4.3사건 발생 1년 전에 일어났던 3.1사건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1947년 3월 1일 3.1절을 기념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쏜 총에 무고한 시민 6명이 죽었고, 그 사건으로 제주도민 95%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있었다. 총파업에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부 경찰들도 가담했을 정도였다.

4.3사건의 남로당 관련성 여부에 대해 보고서는 "당시 남로당은 세력이 교체되었고, 무장투쟁을 하자고 했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였으며, 제주도당이 중앙당의 지시와 관계 없이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무장투쟁을 결행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지도부 투표에서 12대7로 통과되기는 했지만, 말이 무장투쟁이지 자기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설명.

일각에서 제기하는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 의한 무장폭동설'은 사실과 다르고,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선거관리요원과 경찰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지적됐다.

박찬식 전문위원 "군경은 말도 안 되는 논리 펴"
 
4.3조사단 전문위원으로 참석해 보고서를 기초한 박찬식 제주대 강사 겸 제주4.3연구소 상임이사는 국군과 경찰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대해 격분했다. 그는 29일 "군경은 말도 안되는 억지 논리를 편다"면서 29일 4.3위원회 회의 때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박 전문위원은 "수만명의 도민이 죽어갔는데, 군인과 경찰이 한 게 아니라고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면서 "자기들만 나라를 걱정하는지, 자기 선배들만을 보호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보고서가 작성된 데는 그 동안 제주도민들의 노력도 컸다고 박 위원은 술회했다. 그는 "연구소에서는 직접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500여 명 가까이 증언을 들었고, <제민일보>는 3000여 명의 증인을 들었다"는 것. 그런데 "학살에 나섰던 서북청년단 회원들은 한 명도 사람을 쏘았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고. 그는 학살자 처벌을 원하지도 않는데, 학살자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 위원은 보고서 채택을 둘러싼 수구세력과 일부 보수언론의 '의미 깎아 내리기'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5.10선거 당시 단독정부 수립을 유일하게 반대했던 지역이 제주도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것'이라 깎아 내린다"며 "하지만 이런 저항도 막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국가라 할 수 있는가. 군인과 경찰,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만이 나라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박 위원은 "과거사 청산과 관련, 국가 차원의 진상보고서를 채택한 것은 4.3사건이 처음"이라며 "이는 제주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고, 이제부터 과거사 해결의 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보고서 채택의 의미를 평가했다.

이성찬 4.3유족회장 "당연한 역사 귀결, 대통령 사과해야"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보고서'가 채택된 29일 오후 제주 시내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이성찬 4.3유족회장은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라며 "진실은 언제나 밝혀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 동안 4.3은 왜곡돼 왔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그랬고, 군사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4.3은 금기시돼 왔다. 정권은 희생자들을 폭도라 하고, 만행을 일삼았다고 했으며,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4.3의 역사 바로세우기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 회장은 올해 4.3사건 55돌 기념식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선거 때 제주도에 와서 '국가의 잘못이 드러나면 유족과 도민들에게 사과를 하겠다'고 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도민들은 기억하고 있으며, 반드시 참석하리라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도 국가의 책임이 드러났다"면서, "기념식 참석을 위해 청원서와 건의서를 넣었으며, 많은 시민단체와 문화예술단체, 학술단체까지 나서서 이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회장은 "4.3유족회 회원들은 보수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이 '국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 분노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보수기득권 세력들이 신문에 광고까지 내고, 몇몇 신문들은 '남로당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까지 쓰고 있다"며 "이는 자기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 회장은 4.3사건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미군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그 동안 현장지휘관들이 양민들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에 공개된 국무회의 기록에 따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때 '강경 진압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된 이상 이승만과 미국이 4.3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