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일 오후 5시20분>

"오늘은 민족적으로 슬픈 날" "전범국가로 낙인찍힌 날"
국회 '파병동의안' 원안 통과시키자, 시위대 격분

국회에서 2일 오후 5시20분경 '파병동의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학생, 노동자들은 격분하면서도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이날 집회 사회자를 통해 파병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일제히 일어서 국회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이들과 함께한 한상렬 목사(여중생 범대위 상임공동대표)는 "오늘은 민족적으로 슬픈 날"이라며 "전범국가로 낙인찍힌 날이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국회 앞에서 '파병안 반대 단식 농성'을 6일동안 진행한 한 목사는 "전쟁도발자에 손을 들어주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국회의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목사 곁에서 '파병반대' 구호를 외치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도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있겠느냐"며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수준이 이 정도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헌법에 위배되며 반인륜적인 학살 범죄에 공범자가 되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결의한 국회의원은 우리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거나 이끌어갈 능력이 없다"며 "우리 국회는 앞으로 제발 물갈이가 되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위대 곳곳에서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무참히 불식시킨 국회의원들을 규탄한다"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사로 진격투쟁을 벌이자"는 외침이 터져나오고 있다.

또 일부 시위 참가자와 경찰간에 심한 몸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국회 앞까지 진출한 반전시위대가 대기중이던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 '전쟁중단 파병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2일 오후 이라크 파병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경찰과 반전시위대가 격렬히 충돌하고 있다

< 4월 2일 오후 8시>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진격대상 놓고 지도부-시위대 갈등 빚기도

파병안 통과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국회 앞 파병저지 시위대는 국회진격을 시도했으나 이후 시위 지도부가 "대부분의 의원들이 파병을 찬성한 한나라당 쪽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하면서 의견이 나뉘어 갈등을 빚었다.

시위 지도부가 한나라당을 진격목표로 설정한 것은 "의원들이 국회를 빠져나간데다 국회진입을 시도하면서 많은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국회 진격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국회로"를 연호했다. 사회자가 "아쉽지만 미련을 버리고 한나라당으로 가자"고 방송을 하자 일부 시위대는 "이것은 미련이 아니다. 이것은 아쉬움이 아니다"라고 소리치며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시위대와 지도부 사이의 의견대립이 1시간 30분 가까이 길어지면서 시위대는 국회나 한나라당 진입은 시도하지 못한 채 도로에서 농성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국회 앞 도로 한켠에 앉아 농성을 하던 여중생범대위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와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사회단체 활동가를 1시간 가량 포위하기도 했다. 또한 산발적으로 경찰버스에 올라가 국회진입을 시도하던 참가자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풀려났다.

결국 시위대는 오후 7시 이날 집회를 정리했다. 시위대는 "싸움은 계속된다. 파병을 저지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투쟁의지를 보였다. 몇 시간 전까지 "파병계획 철회하라"고 터져나온 구호는 "파병결정 철회하라"로 바뀌었다. 4월 4일 학생행동의 날, 4월 11일 한총련 동맹휴업, 4월 12일 범국민 결의대회 등 구체적인 이후 투쟁에 대한 광고도 이어졌다.

이날 정리집회에서는 이후 투쟁의 결의와 함께 의견대립에 대한 반성과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최지선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오늘 투쟁의 타격대상은 국회였는데 국회로 가자고 외쳤던 지도부가 한나라당으로 방향을 바꿨다"며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지도부가 어찌 지도부라고 할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성훈 사회당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오늘은 우리나라가 전범국가로 전락한 수치스러운 날인데 오늘의 투쟁이 과연 힘을 다해 싸운 것인지 묻고 싶다"며 "우리가 국회내에서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모르는채 집회가 정리됐다"고 꼬집었다.

정성훈 직무대행은 "파병군인들이 한국을 떠날 때, 딕 체니 미 부통령이 전비를 요구해오고 국회가 이를 결의할 때 다시 한번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며 "이후 민주당과 청와대로 진격하자"고 제안했다.

시위대는 오후 7시 50분경, '아침이슬'을 부르며 해산했다. 일부 시위대는 농성장에 잠시 남아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