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경총탈퇴 속내
제도 확정 앞두고 그룹별 이해관계 불거져
복수노조 유예 ‘한나라 중재=삼성안’ 판단
현대차쪽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에 사활 걸어
현대·기아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이 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탈퇴를 선언하게 된 것은 이른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 확정 단계에 이르자 이해관계를 속내까지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복수노조 허용을 3년간 유예한다’는 것을 뼈대로 하는 한나라당 쪽의 중재안을 사실상 ‘삼성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노총이 당정과 사전 조율해 전격적으로 복수노조 허용 유예를 선언하고 나서고, 경총에서도 전임자 임금 금지를 단계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공개적으로 반발하게 된 것이란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는 노사문제에서 삼성그룹 때문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강박감이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강성노조로 노사갈등 비용을 가장 크게 치르는데, ‘무노조’인 삼성의 입김이 주요 노사정책에서 더 강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이미 13년 전에 이뤄졌어야 하는 것인데 그간 경총이 계속 미뤄왔다”며 경총의 특정 임원이 이를 주도해왔다고 지목했다. 이 임원을 통해 삼성그룹의 견해가 반영됐다는 뜻이다.
현대차그룹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카드에 매달리는 것은 이를 통해 대결적인 그룹 내 노사관계를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현재 노조 전임자가 217명이고 이들에게 한해 137억원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기아차는 144명의 전임자에게 87억원의 임금을 지급한다. 현대차그룹 쪽은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노조 회비에서 지급하게 되면 반복돼온 파업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의 다른 관계자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노조 회비의 상당부분이 ‘투쟁자금’으로 쓰이는 지금 같은 상황보다는 대결구도가 완화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삼성그룹 관계자는 “재계는 전반적으로 복수노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70% 이상이 복수노조 도입에 반대한다는 기사도 있지 않았냐”고 말했다. 현대차의 견해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말하자면 현대차는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고, 다른 기업들은 복수노조 금지에 더 관심이 크다”며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본 다른 그룹들의 견해는 현대차가 주장하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더 쏠리는 태도를 보였다. 엘지(LG)그룹 관계자는 “큰 틀에서 경총에 ‘전임자 임금 회사 지급을 금지하고 교섭창구를 단일화한다는 전제라면 복수노조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관계자 역시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좀더 법안 정비가 필요하지만,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만을 견줘 보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우선”이라며 “전반적으로 현대차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입김이 강하다는 현대차 쪽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역시 최근 주요 회원사를 대상으로 의견을 취합해 놓고도 단일안을 내놓는 것은 물론, 의견을 모은 결과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원사마다 두 쟁점에 대한 시각차가 있어 의견은 다 모았지만 따로 발표할 수는 없다”며 “단, 창구인 경총을 통해 회원사 의견은 전달했다”고 말했다.
최재황 경총 홍보이사는 “그동안 협상에 최선을 다했지만 과정이 모든 업체의 이해관계를 다 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여러 업체들에서 그런 것에 대해 섭섭함을 표시했다”며 “그런 시각차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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