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타격받지만 가장 대책이 없는 곳

7월 1일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철거되는 것은 청계고가도로를 떠받들고 있는 4개의 육교다. 이 육교는 7월중으로 이용이 중단될 예정이다. 청계천의 '명물'로 자리잡은 육교 위의 상인들이 가장 먼저 공사의 영향을 받는 셈이다.

두 개의 육교에는 서울시에서 허가한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나머지 두 개의 육교에는 노점상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사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육교에 삶의 터전을 둔 모든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서울시의 '무대책'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30년 육교 위 장사, 이제 어디로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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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6가 동대문 종합시장 앞 육교엔 17가구의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육교가 생기기 전부터 30여년간 양말 장사를 해왔다는 김기임(57)씨. 육교 위 장사로 세 아들을 키운 그는 공사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 서울시로부터 단 한번의 통고나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공사를 정말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작이 되면 적어도 우리 육교만은 상가를 이어주는 통행로인데 가장 마지막에 허물어지지 않겠어요?"

그의 눈에선 아직도 막연한 희망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바뀐다.

"공사를 생각하면 도무지 밤에 잠이 안 와요. 입안이 온통 다 헐어버렸다까요. 국민이 있어야 대통령이 있고 시장이 있는 것 아닙니까? 잘 할 줄 알고 투표했는데, 정말 야속하고 속상해 죽겠어요."

그는 청계천에서의 긴 시간 동안 숱한 어려움을 접해도 그때마다 잘 자라주는 세 아들을 생각하며 꿋꿋이 견뎌냈다고 한다. 하루에도 두세 번 단속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 다니다가 경찰서에 끌려가 각서를 썼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청계천 육교를 다시 찾은 것이 수십번.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려는 막내 아들 학비를 충당해야 하지만, 김씨는 장가간 두 아들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난 아직도 내 스스로 용돈을 벌어먹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고 살고 싶지 않아요. 청계천 고가 도로가 위험하면 그것만 제거하지 왜 애꿎은 수천만 서민들을 죽이려 하는 겁니까? 보상금이니 뭐니 다 필요 없어요. 딱 2년만 연기해주세요."

자신들의 사정을 시장에게 꼭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는 김씨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 하루 매출 3만원도 올리기 힘든데,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켰던 나이든 사람들이 당장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죠?"

그녀는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취재진이 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변에는 다른 상인들이 기웃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육교 위 상인들은 대부분 20년에서 30년 동안 육교를 지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청계천 7가 신평화 육교에서도 반복됐다.

"지금까지도 서울시가 아무런 말이 없는 걸 보면 우리 보고 알아서 비켜달라는 소리와 다름없는 것 아닌가요? 도대체 어떻게 과정이 진행돼 가는지조차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생계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는 없어요. 대책이 없으면 못 비킵니다."

김필희(37)씨는 서울시의 무성의와 무대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 말을 이었다.

"조용히 있다가 또 갑자기 용역 깡패들이 몰려와 다 망쳐 놓는 것 아니겠어요!"

육교 노점상인들에 따르면 전국 노점상 협회에서 '노점상 벼룩시장의 관광 지역화', '노점상 개별 보상' 을 서울시에 비공식으로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반응이 없다고 했다.

좀더 적극적인 청계 5가 육교 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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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5가 육교에 위치한 스카이 상가 주민들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이들은 지금까지 공식 상가로 지정돼 서울시에 세금을 내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동대문 종합상가 앞 육교 위의 사람들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육교를 오르는 계단엔 '생존권 보장 없는 철거 결사반대'란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서울시로부터 7월 14일까지 자진 철거 통보를 받은 상황이다. 그러나 한 가계 당 대략 들었던 초기 비용 5000만원의 보상이 전혀 없고 상권의 장지동 이동 또한 육지에 있는 상인들 차지가 되자 그들은 청계천 상가 수호 대책 위원회에 가입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서울시가 인가한 육교에서 모든 세금을 다 내는 합법적 상인이었어요. 때문에 우리 또한 육교 밑의 상인들과 똑같은 보상 권리를 당연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에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는 강아무개(41)씨는 6개월 전부터 서울시와 교섭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비현실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만을 하고 있어요. 지금 이대로라면 눈뜬 장님인 양 서울시에 당하고 말 겁니다. 새로운 상권인 장지동으로 같이 편입할 권리와 최소한의 이주비나 보상비가 장기적으로 우리에게도 지급돼야 합니다. 서울시는 일방적으로 우리 서민들의 삶을 초토화시키고 있어요."

스카이 상가 상인들 역시 인터뷰하는 상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러는 "이렇게 말하면 뭣해! 변하는 건 없어"라며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시 "자율적 조정 바란다"

청계천 복원공사와 관련해 서울시에서 갖고 있는 노점상 대책은 전무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영업을 임의로 막는 등 단속이나 정비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또한 대부분 상인들이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생업자금 융자 등 저소득층 지원사업을 우선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 노점상인과 다르게 육교 위 상인들의 경우 바로 삶의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설현장과 노점정비팀 신상철 팀장은 "육교 위에서 장사하는 분들에 대한 대책은 특별히 없다"며 "다만 이분들은 다리 밑으로 내려가 장사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 이어 "자율적으로 조정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스카이 상가의 경우 서울시 건설행정과 최세욱 팀장은 "6월 초, 상인들에게 이주단지(장지)쪽으로 갈 것을 택하든가, 서울시 시설관리 공단에서 관리하는 을지로 지하보도 상가 대체점포를 택하는가를 제안했다"며 "하지만 상인들이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카이 상가 조흥연(49)씨는 "서울시 제안의 전제 조건은 6월 18일까지 서류를 작성하고 25일까지 상가를 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하물며 집을 구한다 해도 몇 달 몇 년이 걸려야 하는데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년 동안 한 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어떻게 20일 남짓동안 집을 비울 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결국 제안을 거절한 상인들은 어떤 보상도 없이 7월 14일까지 자리를 떠나야 할 상황이다.

이와 관련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뚜렷한 대책이나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다. 경실련은 "노점상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는 부분"이라고 난감해 하며 "서울시에서 4월초부터 노점상 정비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시민사회단체들과 노점상들이 반발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계천 모든 상인들은 7월 1일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복원공사 뒤 바로 일터를 잃게 될 육교 위 상인들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20년간 육교를 지켰다는 박영화(56)씨의 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다리와 함께 무너뜨리지 마세요. 우린 돈을 원하는 거 아니에요. 몇 십년 동안 지낸 이곳을 잃고 싶지 않아요. 혹시 우리가 대통령한테 가봐야 해결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