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미국 지원 업고 차기 이라크 대통령 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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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흐마드 찰라비 INC 의장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후 이라크를 누가 통치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일정 기간의 군정을 거친 뒤 '이라크인에 의한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적인 이라크 정부'가 과연 이라크인의 뜻에 따라 구성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아랍국가들이 의심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미국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 정권이 세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반 후세인 활동을 해왔던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9일 "미국 주도의 과도 행정기구가 쿠웨이트를 떠나 이라크로 들어올 것"을 촉구한 이라크국민의회(INC)의 지도자 아흐마드 찰라비다.

찰라비는 이미 지난 주부터 '제1 자유 이라크대대'라는 이름의 부대를 이라크 남부 나시리랴에 파견해 미군과 합동작전을 벌였다. 이 부대는 약 700명의 망명 이라크인으로 이뤄졌으며, 이라크 민병대와 전투를 벌이는 미군을 위해 통역과 현지 안내를 했다.

그는 지난 6일 미 CBS의 '60분'에 출연해 "자유 선거가 실시되고 민주적인 이라크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최소한 2년간 미군이 이라크에 진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라크 반체제 세력은 크게 6~7개 정도로 나눠진다. 종족이 다른 쿠르드족을 제외한다면 가장 큰 세력은 이란에 망명해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를 이끄는 아야톨라 무하마드 바크르 알 하킴이다.

1만5000명의 병력을 보유한 그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이라크 남부에 병력을 파견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하킴에게 절대 이라크전쟁에 관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자국과 대립하는 이란에 근거지를 둔 그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확히 말하면 미 행정부 안의 국방부에서 찰라비를 선호하는 것은 그가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라크인'이기 때문이다.

찰라비는 1945년 이라크의 부유한 은행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시아파 회교도였다. 그러나 1958년 청년 장교들이 하시미테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세우자 찰라비 집안은 이라크를 떠나 미국으로 갔다. 그의 나이 불과 13살 때다.

그때 이후 찰라비는 지금까지 이라크 안에 들어와 산 적이 없다.

미 시카고 대학과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수학을 공부한 그는 1980년대에 요르단에 페트라 은행을 설립했다.

그러나 회사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요르단 법정에서 열린 궐석 재판에서 22년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찰라비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인 1989년 요르단을 빠져나가 실제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다.

한 요르단 고위 관리는 "찰라비는 지금이라도 요르단에 입국하면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힐 정도다.

어쩌면 경제사범으로 일생을 마칠 뻔 했던 찰라비가 미국 보수파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걸프전 이후 부터다. 이때부터 그는 미국 공화당 의원 및 국방부 관계자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인 샘 브라운백은 "찰라비와 5년간 일을 해봤다. 이라크 반체제 세력을 조직해서 하나로 만들 사람은 그 밖에 없다"며 극찬을 했다.

찰라비는 딕 체니 미 부통령,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장 등과도 친밀한 관계다. 특히 울시 전 CIA 국장은 찰라비의 강력한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찰라비는 1998년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자금으로 미 의회로부터 9700만 달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실패했고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의 용처가 불분명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은행자금 횡령, 후세인 정권 전복 시도 실패, 이라크 일반 대중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이웃 아랍국가들이 싫어한다는 점 등을 들어 미 국무부와 CIA는 찰라비에 대해 비판적이다.

실제 지난 8일 'LA타임스'와 인터뷰를 한 한 아랍국가의 외무장관은 익명을 전제로 "이라크에게든 아랍세계에게든 그만큼 나쁜 인물은 없다"며 "내 생각에 그를 진정으로 환영하는 아랍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정치적 야심과 독재적인 행동 때문에 이미 분열된 이라크 반체제 세력들 사이에서도 더욱 더 분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사람들이 후세인 정권하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이라크를 떠나 편히 살다가 격변의 전야에 한 몫 잡아보려고 다시 돌아온 투기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주도했던 미 국방부와 공화당 강경파들은 찰라비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그들의 눈에 찰라비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충실하게 소화할 수 있고 가장 협조적인 이라크인이다. 조직 장악능력이 있고 철저한 친미파에 자유시장경제 옹호자로 미국의 이해에 잘 부합된다.

시아파인 찰라비는 평소 집권 바트당의 수니파들을 모두 숙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니파는 이라크의 정치와 경제의 권력층을 형성하고 있다. 결국 그의 집권은 이라크 안에 다시 한번 피의 숙청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이번 전쟁을 주도한 미 국방부가 지원하는 찰라비가 차기 이라크 정권의 담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찰라비는 13살 때 이라크를 떠난 뒤 단 한번도 고국을 밟아본 적도 없다. 일반 이라크 민중들은 전혀 그를 모른다. 그가 벌였던 반 후세인 활동은 거의 성과를 낸 적이 없다. 찰라비가 이끄는 이라크국민의회 자체도 이라크 안에 기반이 없다.

즉 찰라비는 이라크 안에 아무런 뿌리없이 이번 전쟁을 앞두고 미 국방부에 의해 '공수'된 것이다.

이런 그가 정권을 잡게 된다면 결국 이라크에 진주하게 될 수만명 미군의 호위를 받으며 이라크 민중위에 군림하는 친미 '꼭두각시' 정권에 불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