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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배(57·경기도 구리)씨는 작년 4월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속
이 더부룩해 병원을 찾아 내시경 진찰을 한 결과 ‘말기 판정’이
나왔다. 의사는 “대장에서 암 덩어리가 두 군데 발견됐으며 이미
간 2곳과 폐에도 퍼져 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삶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기적같이 회
생하고 있다. 새로 개발되고 있는 신약(新藥) ‘얼비툭스’를 맞은
뒤 일어난 일이다.
대장암만 골라 잡는 표적 항암제 얼비툭스는 독일계 제약회사
머크가 개발했다. 항암치료 5개월 만에 박씨의 암은 확 줄어 수
술로 떼어낼 정도가 됐다. 박씨는 작년 9월과 10월 대장과 간,
폐에 있는 암을 제거했다. 지난 달 그의 종양 수치는 ‘제로’에 가
깝게 떨어졌다.
국내 암 환자가 4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혁신 항암제가 쏟아지
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치료법으로 생명을 포기했던 암 환자
들이 극적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암 환자는 5월 현재 40만3354명.
혁신 항암제는 암 세포가 자라는 과정의 핵심 부분을 차단하는
치료제다. 암 세포만 죽인다고 해서 ‘표적·타깃(Target) 항암
제’로 불린다. 2001년 ‘기적의 약’으로 불리며 국내에 처음 도입
된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대표적이다.
그후 현재까지 국내에는 대장암·신장암·폐암·악성 림프종·유방
암 등 미국임상종양학회가 인정한 11개 종류의 타깃 항암제가
모두 들어왔다. 8개는 시판 허가를 받았고, 3개는 막바지 단계로
임상시험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표적 항암제는 완치는 아니더라도 환자의 30~80%에서 생명 연
장효과를 내고 있다. 탈모·구토 등 부작용도 적어 항암제를 집에
서 먹거나 외래에서 주사를 맞으며 직장 생활을 지속하는 암 환
자들도 늘고 있다.
5년 전 국내에서 글리벡을 최초 복용한 백혈병 환자 양향길(46·
동사무소 직원)씨는 요즘도 매일 글리벡 6알을 비타민처럼 먹고
일터로 나선다. 1997년 백혈병을 진단 받고 재발을 거듭하다 중
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는 글리벡을 먹은 지 9일 만에 퇴원
했다. 지난 해 12월 양씨는 네팔의 히말라야에 가서 해발 4300
ｍ 안나푸르나봉을 등정했다. 그 11일 동안 양씨의 약 봉지엔 항
상 글리벡이 들어 있었다.
이처럼 요즘 대학병원엔 집에서 항암제를 복용하거나, 출근하면
서 1~2주에 한 번 외래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가 수두룩하다.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이선 항암치료 전문간호사는 “항암제를
맞으면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환자도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감도 있다”며 “대장암 최신 항암제 치료 환자 11명
중 6명이 치료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병원 종양내과 조사에 따르면 항암제 치료 환자의 65%가 외래에
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내과 김열홍 교수는 “기존의 항암제도 타
깃 항암제와 병행해서 쓰기 때문에 부작용이 대폭 감소했다”며
“암 환자의 생활 공간이 병원에서 집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
다.
▶표적(타깃·Target) 항암제란?
일반 세포와 다른 암세포 만의 특징을 찾아내 그 부분(표적)을
집중적으로 차단하는 새로운 방식의 항암제를 말한다. 암이 자
라는 데 필요한 특정 단백질을 차단하거나, 항체(抗體)를 만들어
암 세포를 공격하거나, 암 덩어리에 영양을 공급하는 암 혈관만
을 사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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