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여성 파워' 장난 아니네~

고려 시대 문화와 역사 생생히 전해주는 '다시보는 역사 편지,   고려묘지명'   "먹고 살기 위해 전 남편과의 의리를 저버렸지만, 그 친아버지가 (생전에) 다니던 사립학교에 입학시켜 뒤를 잇게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죽은 뒤에 내가 무슨 낯으로 전 남편을 보겠어요?"   고려 중기의 문신 이승장(李勝章 : 1137~1191)의 묘지명이다.   가난을 이유로 전 남편 소생의 사교육에 부정적인 새 남편을 설 득해 사립 학교에 보내는 고려 여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 어 있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컸다.   혼인한 딸이 친정 부모를 모시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으 며 남편을 여읜 여성의 재혼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지 않았다.   '이승장의 묘지명'을 보면 재혼 후 생활에서도 새 남편을 상대로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유산 상속의 과정에서 남자 형제와 동등한 권리를 누렸을 뿐 아니라 여성의 재산이 혼인 후 남편 쪽에 귀속되지 않는 등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는 것이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노자(老子)를 흠모한 불교신자도 있었다.   여진 정벌로 유명한 윤관(尹瓘)의 아들 윤언민(尹彦旼 : 1095~1154)의 묘지명에는 "날마다 푸른 소를 타고 출근하여 낮 에는 일을 보고 밤에는 불경을 외웠다"라는 구절이 있다.   불교를 믿지만 푸른 소를 타고 속세를 떠난 노자의 삶을 동경한 그의 정신 세계를 전해주고 있으며 불교와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신앙이 공존했던 고려 시대의 풍토를 보여준다.   이렇듯 다채로웠던 고려 사회의 문화와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 는 기회가 생겼다.   오는 7월 11일부터 8월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에서 열리는 '다시보는 역사 편지, 고려묘지명(高麗墓誌銘)'전이 바로 그것이다.   묘지명은 묘지 앞에 세우는 묘비와는 다르다. 고려 시대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묘지명은 죽은 사람의 출신지와 집안 내력, 인품 등을 자세히 기록해 무덤 안에 넣은 기록물이 다.   무덤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후세에 전하 기 위한 개인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사 편지이기도 하다.   묘지명만큼 특정 시대의 정치, 사회문화적 풍습에 대해 정확히 기록한 유물이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90여점의 묘지명 중 70여점이 그 모 습을 드러내는 이번 전시는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해동천자의 나라'는 스스로 황제라고 칭한 고려 왕조의 정 치적 특성을 보여주며   2부 '가족과 여성'에서는 가족생활과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췄 다.   3부 '정신 세계'에서는 다양한 사상과 신앙이 존재했었던 고려 시대의 문화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석관 만들기',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묘비명 직접 써보기)' 등의 체험 행사도 마련돼 있어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