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늘 그동안 쌓였던 화가 다 풀렸습니다." 
 
저는 오늘 한 '현행범'을 목격했고, 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이 기사를 씁니다.

6월 2일 오전 10시 30분경, 서울시 서대문구 지하철 홍제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1 

▲ 할머니를 태우려다 정차위반에 걸린 운전경력 30년의 서문옥 기사

 좀 늦게 회사로 출근하는 길이었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침 회사로 가는 광화문행 버스가 있었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었습니다.

그리고 버스 계단으로 단박에 뛰어올랐습니다. 그러다 앞 사람과 부딪혔습니다. 그 사람이 계단 중간에 멈춰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을 살펴보니 맨 앞에서 한 할머니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버스 운전사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순간,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단 떠나지... 서서 이러나...' 속으로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경로석으로 가서 앉았고, 저는 바로 그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출근시간이 지난 버스 안은 빈 자리가 많았고 승객 대부분은 주부와 아이들, 그리고 나이든 승객들이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20, 30m쯤 갔을까, 버스가 갑자기 서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운전사는 할머니가 앉은 자리로 다가와 할머니에게 정중히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할머니 모셔다 드리려다가 벌금 20만원을 내게 생겼어요. 그러니까 혹시 나중에 연락드리면 할머니가 말씀 좀 잘 해주세요."

@#2

사정은 이랬습니다. 운전사가 승객을 태우고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출발하려던 순간, 할머니가 버스를 타기 위해 다가왔고 버스 운전사는 할머니를 못 본 체 할 수 없어 버스를 세우고 할머니를 태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카메라에 잡힌 것입니다. 정류장에 바짝 차를 대지 않고 승객을 태웠기 때문에 구청에서 나온 직원이 '정차위반'으로 딱지를 끊었습니다. 20만원짜리라고 합니다.

벌금을 내게 생겼는데도 운전기사는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말 속에 여유와 관용이 배어 있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가를 물었고, 할머니는 흔쾌히 응하면서 포즈까지 취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이 말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운전기사가) 벌금 안 내도 돼?"

응암동에 사는 여든 세 살의 김정자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퉁퉁 부어 있어서 명동에 있는 안과에 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버스 타는 게 힘들어. 어떤 사람은 잘 세워주는데 어떤 사람은 잘 안 세워. 내가 종로 살 때는 가는 방법을 알았는데 응암동으로 이사와서는 가는 걸 몰라. 이 사람이 데려준다니까 고마웠지."

운전기사의 이름은 서문옥(58)씨로 버스운전 경력만 30년이라고 합니다.

"빨리 못타고 빨리 못내리니까 운전기사들이 노인네들 태우기를 싫어하지요. 나도 그냥 지나칠 때가 있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지팡이까지 짚고 있어서 그냥 갈 수가 없었어요."

사실 버스가 주요 이동수단인 저는 버스기사들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벨을 늦게 눌렀다고 큰 소리로 핀잔을 주는 기사, 정거장을 그냥 지나쳤는데도 미안하다고 말 한 마디 없는 기사, 승객들의 취향과 무관하게 자기 멋대로 음악 테이프를 돌리는 기사,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는 기사, 차선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난폭 운전을 하는 기사... 승객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출발을 서둘러 승객들이 휘청거리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대로 항의도 못했습니다. 여러 사람 있는데서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가 오늘 다 녹았습니다.

"서대문구청 교통과 담당자님, 선진운수 152번 서문옥 운전기사에게 '딱지' 떼지 마세요."

저는 오늘 공무원에게 청탁성 기사를 쓴 것입니다.

                                                                                ⓒ2003 박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