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토쿠(聖德)태자 (574~622년)의 발상을 갖는 게 필요한데….'앞으로    일본을 이끌 아베 신조는 요즘 사석에서 꽉 막힌 한국.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이 말을 꺼내곤 한다고 그의 측근은 전한다. 쇼토쿠 태자는 6세기 후반 일본이 처음으로 중국에 공식 외교사절로   보낸 인물이다. 당시 수나라에 보낸 편지에서 '해 뜨는 나라의 천자(天子)   가 해 지는 나라의 천자에게 서한을 보내노니…'란 표현을 써 수나라 황   제를 격노케 한 장본인이다. 아베의 이 말에는 앞으로 그가 한국과 중국   에 대해 어떤 외교 정책을 쓸 것인가가 함축돼 있다. 즉 그의 아시아 외교   정책의 핵심은 '한국.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처럼   꼬이게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두 나라에 끌려다니는 외교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베의 외교정책은 미국과의 동맹체제를 더욱 확고히 한다는 대전제   아래서 아시아 외교를 유연하게, 달리 표현하면 모호하게 펼쳐나가는   모양새가 될 전망이다. 신임 총재에 선출된 뒤 아베는 NH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중국과의   정상회담 추진을 원하고 있다'며 '이웃 국가들 간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   을 수도 있겠지만 지도자들이 서로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 관계는 일단 낙관=근본적으로 아베는 한국과의 관계에 낙관적이   다. 그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로 정상회담이 10개월간 중단된   상태지만 한국과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과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 별 문제없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사적으로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깊고, '한류 팬'인 부인 아키에와   수시로 한국을 찾는다. 아키에는 서울을 방문해 한복을 입고 다닐 정도   다. 하지만 이 같은 개인적 관심만큼이나 대한 외교에 비중을 둘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아베 정권의 대아시아 외교의 축은 어디까지나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일 간에는 이미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 절충안이 오가고   있다. ◆ 관건은 야스쿠니와 북한=한.일 간 관계 개선의 1차 관건은 야스쿠니   참배 문제다. 아베는 '간다 안 간다, 갔다 안 갔다를 얘기하지 않을 것'이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한국과 중국이 덥석 손을 잡을 순   없는 상황이다. 아베 측은 참배 중단에 대한 확답은 피하면서 '정상회담   을 일단 해야만 참배 유보의 명분도 생기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선에서   절충할 공산이 크다. 물밑에서 이뤄지던 미국의 '야스쿠니 압박'이 전면   에 부상하는 조짐도 아베로선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아베 정권이 야스쿠니 문제를 푼다고 해도 훨씬 복잡한 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 방북으로 사상   첫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 도중 일본인 납북자 가운데 8명은 이미    숨졌고 5명은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졌다. 점심 휴회시간 대   기실에 모인 일본 대표단은 이 소식에 넋을 놓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아베   가 고이즈미 총리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김정일이 사죄하지 않으면    공동선언 서명은 보류하고 그냥 돌아갑시다.' 어딘가에 설치돼 있을 도   청용 마이크를 의식한 발언이었다고 일본 측 관계자들은 회고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후 속개된 회담에서 실제로 사죄 발언을 했다. 7월의 북한 미사일 발사는 아베에게 '끝내기 수'를 제공했다. 고이즈미   총리를 대신해 대북 제재 발동과 유엔의 결의안 제출을 지휘하면서 위기   상황 대응능력에 대한 신뢰감을 일본 국민에게 심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