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허덕' 용역.중소하청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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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공단의 한 전자부품 회사에서 부품조립 일을 하는 최정숙(37·가명)씨는 일요일마다 예식장을 찾는다. 피로연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는 일당 5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위해서다.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최씨가 일요일마다 잔칫집 식당문을 두드리는 것은 건설 일용직에 종사하는 남편(41)의 불안정한 수입과 자신의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꾸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3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지난달 최씨가 손에 쥔 월급은 48만2170원.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9시간씩, 26일을 일하고 받은 돈이다. 최씨는 "올해 들어서는 회사 일감이 줄어들어 한달 7만~8만원씩 받던 초과근무 수당도 못 챙기고 있다"면서 "다른 회사로 옮기려고 열 군데도 넘게 알아봤지만 모두 비슷비슷한 조건들이라 관두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월급명세서에 적힌 최씨의 시간당 급여는 2293원, 하루 일당은 1만8342원이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료 등을 떼기 전 명목상 총지급액은 52만8200원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정 최저임금인 월 51만4150원(시급 2275원, 하루 1만8200원)을 겨우 턱걸이한 수준이다.

하루 10시간에 월 50만원‥일감부족 추가수당도 없어
빚 많아 자녀에게 손벌려‥아픈 몸에 마음 고생도

서울 노원구의 한 대형할인매장에서 용역업체 소속으로 손님들의 쇼핑카트를 끌어당겨 주는 박지연(47·가명)씨의 기본급은 월 53만3860원으로, 법정 최저임금보다 2만원이 많다. 박씨는 지난달 직장에 다니는 딸(25)에게 고민 끝에 아쉬운 손을 벌렸다.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야근수당까지 포함해 95만원을 받는데, 새벽 택시비 등 교통비와 한달 부식비, 전세자금 대출 이자, 보험료 등을 내고 나니 공과금 낼 돈 13만원이 모자랐던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 봄 남편이 공사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다 허리를 다친 뒤 가정의 주수입원으로 나섰다.

작은 방 2개가 있는 9평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는 박씨는 "시집 가야 할 딸에게 손을 벌릴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은행 빚을 더 얻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의 무빙워크에 서서 무게 40㎏이 넘는 손님들의 쇼핑카트를 쉴 새 없이 끌어당겨주느라 늘 목덜미와 어깨를 파스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집에서는 아픈 내색도 하지 못한다.

'저임금 지대'에서 허덕이는 노동자는 주로 청소나 매장 관리 등 용역업체나 중소 하청업체 등에 집중돼 있다.

청주대학 청소원들은 지난 3월까지 병가나 4대 보험 혜택도 없이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월 43만원을 받아오다 최저임금 위반 등에 대해 용역업체를 노동부에 고발한 상태다. 4월 들어온 새 용역업체는 55만5550원으로 조정했다.

지난해 기본급을 법정 최저임금에 딱 맞춰 받던 서울대 청소·경비원들은 올 1월분부터 새 용역업체로부터 남자 55만6천원, 여자 54만2천원으로 기본급을 조정받았다. 서울대 청소원 이순희(56·가명)씨는 "최저임금이 무엇인지,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새벽 5시30분에 집에서 나와 오후 4시까지 일하고 한달에 8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처럼 법정 최저임금(고정수입 월 51만4150원)을 턱걸이한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는 전국 100만명에 이른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로 보면 전체 노동자 1321만6천명 가운데 84만9천명(6.4%)이 법정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을 갓 넘는 수준인 월 60만원 이하의 월급에 의존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8.9%인 121만1천명에 이를 것으로 민주노총은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