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폰으로 촬영한 사진의 선명도가 디지털카메라 수준으로 올라서고,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캠코더폰까지 등장하면서 갈수록 대범하고 교묘한 사생활 침범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권단체 등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카메라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 카메라폰 악용 실태=회사원 김유경(28·여)씨는 최근 전자우편 스팸메일을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목욕탕 몰카(몰래카메라)'라는 제목으로 날아 온 한 음란사이트 광고에 옷을 벗고 있는 자신의 뒷모습이 짧은 동영상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경찰에 신고해 해당 사이트를 찾아 나섰다. 일주일 뒤, 경찰은 카메라폰으로 찍었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외국에 서버를 두고 운용하는 업체여서 더이상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대학생인 송아무개(22·여)씨도 "최근 지하철 좌석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내 사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됐다"고 털어놓고는 "그 뒤로는 같은 옷을 입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인터넷 성인사이트들은 아예 '몰카방' 항목을 두고 '아마추어 작가들의 투고를 기다린다'는 식으로 카메라폰 사진을 마구잡이로 끌어모으고 있다. 이곳에 게시된 사진과 동영상은 누구든 쉽게 내려받을 수 있어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퍼져 나간다. 사진이 찍힌 장소도 목욕탕, 비디오방, 나이트클럽, 공원벤치 등 공공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이웃집의 부녀자가 예사로 카메라폰 노출의 대상이 되는 등 범죄 수준의 사생활 침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폰은 사생활 노출 뿐 아니라 기업비밀 유출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과 삼성전자 기흥공장 등은 기밀 보호를 위해 아예 직원들의 카메라폰 반입을 금지시킨 바 있다.

◇ 외국사례 및 대책=오스트레일리아 기독교청년회(YMCA)는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이 기관이 운영 중인 전국 300여개 체육관 수영장과 스포츠센터에서 카메라폰 사용을 금지했다고 영국 <비비시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북아일랜드의 지방의회도 자체 운영하는 레저센터에서 카메라폰 반입을 금지했으며, 일본의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중이용시설 안에서의 카메라폰을 사용을 금지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회교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아예 카메라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정보통신부는 최근 카메라폰 사용에 대한 지침서를 내놨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카메라폰 이용률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아직 이에 대한 대책을 전혀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오히려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카메라폰 규제 논의가 그나마 수출 효자 구실을 하고 있는 카메라폰 산업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단말기와 이동통신 업체들 또한 내수경기를 지탱해 주는 카메라폰 사용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정보보호와 인권단체들은 공공장소에서 카메라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이를 위반할 땐 과태료를 물리는 등의 제재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