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린 고 이소선 여사의 발인예배가 7일 각계 각층의 애도 속에 서울대병원에서 거행됐다. 노동 운동 현장에 나가기 전 늘 기도했다던 고 이소선 권사의 마지막 가는 길.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며 산화한 아들 전태일 열사의 유언을 따른 지 40년. 노동자들이 핍박받고, 외로운 싸움을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던 이소선 권사가 그토록 사랑했던 노동자들을 뒤로 하고 하늘 길로 떠났다.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와
노동운동 관계자, 창신교회 교우 등 발인예배 참석자들은 이 권사가 좋아했다던 찬송가를 부르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조헌정 목사(전태일재단 이사장)는 "한국 사회를 위해 깨어 있는 삶을 산 어머니와 전태일 두 사람을 하늘로 보냈다"며 "유가족들은 슬퍼하기보다 기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권사는 추모객들의 가슴속에
노동현실의 개선을 위해 헌신한 실천운동
가로, 기도의 삶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신앙인으로 남았다.
청계피복노조가 만들어질 당시 청계천 인근에서 형제교회 목회자로 활동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는 "이소선 여사는 노조원들과 함께 성경공부와 예배를 드릴 때 교회의 격려를 누구보다 좋아했던 분이셨다"고 회고했다.김 총무는 "이소선 여사가 청계노조, 전태일 기념 노조사무실을 만들었는데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고, 모임이 있으면 이소선 여사가 김 총무를 불러 격려사를 부탁하곤 했다"며 "목사가 오면 굉장히 감사하다고 할까, 교회의 격려를 받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셨던 분이셨다"고 말했다.
이소선 권사와 함께 사회의 부조리에 맞섰던 진보 교계 목회자들은 "기독교의 생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분이셨다"고 말했다.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억울한 이들의 어머니로 살았던 이 권사는 자식들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앙 유산을 남겼다.전태삼(고 이소선 여사 차남, 전태일 열사 동생)씨는 "어머니는 평화시장 2만 7천 노동자들이 하나님 한 사람도 잊어버리지 말고, 소외됨 없이 우리 함께 시온의 길을 달려갈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며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잖아요, 그 길을 지켜주세요 하는 기도가 우리 가족들 마음속에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이소선 권사 장례는 대학로 일대와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진행된 거리 영결식을 끝으로 마쳤다. 시신은 경기도 마석 모란
공원에 안장됐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로 일평생을 헌신했던 고 이소선 권사. 이 권사의 삶이 한국 사회에 인간에 대한 존엄이 소중한 권리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일생을 노동자들과 투쟁하고, 또한 하느님의 사도로서 충실한
이소선 여사의 일생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