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박근혜 정부의 기조에 맞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과 정년연장 등 고용안정 프로그램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지만 허울뿐인 생색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SC은행은 최근 은행권 최초로 정년을 62세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영업 실적에 따라 급여를 차등하면서 기존의 만 58세였던 정년을 62세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은행권 평균 정년이 55~58세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신청 대상은 15년 이상 은행에 근무한 직원으로 만 48세 이상 부장급이나 45세 이상 팀장급이다. 55세 이상은 신청할 수 없다.
아직 최종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매년 자기 연봉의 두 배에 해당하는 이익을 내야 기존 연봉의 100%를 받을 수 있다.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다음 해 급여가 최대 30%까지 삭감된다.
예를 들어, 연봉 1억원을 받는 부장이 연간 8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내지 못하면 다음 해 연봉이 7000만원으로 깎인다. 그러다 연봉이 4000만원까지 떨어지면 이후부터는 무조건 목표치를 100%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봉이 매년 500만원씩 삭감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실적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대출 마진이 통상 1%가 안된다는 점에서 연봉 1억원을 받는 직원이 그 연봉을 유지하려면 매년 신규 대출을 200억원 이상 유치해야 한다. 게다가 실적을 평가할 때 기존 고객은 아예 제외된다.
SC은행의 한 직원은 “은행이 제시한 목표치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면서 “정년을 연장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솔깃했지만 막상 내용을 알고 나선 신청한다는 직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권 고용안정 프로그램의 또 다른 축은 계약직의 정규직화다. 신한은행은 지난 1월 계약직 텔러 830여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산업은행도 370명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기업은행은 단기계약직 제도를 없애고, 처음부터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키로 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말하는 ‘정규직’은 실제 정규직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신한은행 텔러들은 ‘RS(retail service)’ 직군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인 무기계약직과는 달리 승진도 되고 정년도 보장되지만 기존 정규직과는 급여 체계가 다르다.
전문가들은 허울뿐인 정년연장이나 계약직의 정규직화는 직원들을 무한경쟁 체제로 내몰면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새 정부 시책에 발 빠르게 부응하는 건 좋지만,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없는 고용안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직원들에게 직군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준다면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단기실적에 따른 정년연장 역시 과도한 실적 압박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