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 사망한 지 35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러나 2005년 현재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은 밝지 못하다. 최근 터져 나온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한국노총 위원장 사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간의 대기업 남성 사업장 위주로 조직됐던 노동조합운동의 한계가 관료주의와 자기 안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거리에서 전태일 열사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쳤던 그날의 올곧은 분노와 인간다운 눈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노동자 대중의 삶에 밀착한 생생한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는 노동문학과 노동자 문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고,
한국 노동운동을 전망해본다. <편집자 주 designtimesp=29277>
순서
1. 그때 그 ‘바보’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 전태일 열사의 삼동친목회 동지들 2.
굽이치는 역사의 물목, 한국 노동문학 3. 70년대 전태일, 그 끝에는 YH가 있다 -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인터뷰 4. 피부빛이 다른 전태일, 이주노동자 5. 비정규 여성노동자에게 희망을
6. 서울 한복판에 열린 전태일 문화거리 7. 민중의 어머니, 천만노동자의 어머니
-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 인터뷰
엄숙하면서도 경쾌하고
숙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전태일 열사 35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오후 4시, 서울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청계천전태일기념관추진위원회(이하 전태일기념관추진위) 주최로 거행된 ‘전태일 거리·다리 준공식’은 열사의 죽음과 정신을
기리는 엄숙하고 숙연한 자리이면서 동시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의 거리와 다리가 완성되는 기쁘면서 감동적인 자리였다.
황만호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그야말로 기적입니다”는 말로 이 모든 분위기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1만 5000여 명의 시민과 단체가 참여해 만든 4000여 개의 동판은 전태일다리(버들다리)를 중심으로
오간수교에서부터 나래교까지 1.4km구간의 길을 눈부시게 빛내고 있었다.
시민들과 각계각층의 인사들
3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을 찾으면서 열사의 정신을 되새겼다.
민종덕 전태일기념관추진위 집행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가 되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노동자 임에도
노동자를 기념하는 거리가 없었다”면서 “이번 전태일 거리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것이고 노동자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알아주고 인정하는 증거”라고 거리 준공의 의미를 밝혔다.
“전태일이 부활하고 있다”
이광택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 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이 자리에서 전태일이 훌륭하고 힘차게 부활하고 있다”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자리가 서울의 명소, 한국의 명소, 세계의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감회를 밝혔다.
또 강원룡 목사는 축사에서 “오늘
이 자리는 지난 35년간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산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모임”이라며 열사의 지난 삶을 천천히 되짚었다.
그는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며 분신을 하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는 순간에도 ‘내죽음을 헛되이 하지말라’라는 말을 남겼다”며 열사의 마지막을 회고했다.
이어 그는 “우리 사회의 모든 노동자가 인간다운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
청계천의 맑은 물길이 새 역사의 물결이, 전태일 동상 앞에서 이뤄져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35년의 시간이 흘러서 이제야 전태일 열사를 격식을 갖추고 모신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노 의원은 그러나 “오늘의 노동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우리 모두가 전태일이
되고,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자”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후원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이번 행사는
7~80년대 전태일을 기억하는 세대와 젊은 세대가 전태일의 중매로 굳은 약속을 했다는 의미”라며 “신세대들 역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억하며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참여자 대표로 축사에 나선 조강희씨는 자신을 부천에서
사회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소개하고 “학생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돈이라고 답한다”며 축사를
이어갔다.
그는 그러나 “우리 학생들에게 이 거리가 있는 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저 동판이 있는
한, 세상의 질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갖지 않을 것”이라며 “자꾸만 탐욕스러워지는 자신을 볼 때면 이 자리를
떠올리며 추스릴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전태일은 과거의
열사가 아닌, 시대정신”
축사에 이어 민중가수 윤미진 씨의 축하노래로 진행되자 행사의
분위기는 더욱 경쾌해졌다. 윤씨가 ‘그날이 오면’을 시민들과 함께 부를 것을 청하자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은 함께
따라 불렀다.
이날 가장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많은 분들께서 목숨을 마치고 싸우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며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당시에 노동운동하는 사람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노동운동을 한 사람들이 책임이 크다”면서
“이번을 계기로 모든 것이 다 잘 풀리지는 않겠지만 이것으로 역사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와 토대가 마련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전태일 열사는 과거의 열사가 아니다. 노동자, 서민을 위한
시대정신이다”며 간결한 한 마디로 열사의 정신을 정리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
인사들과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 등 정계 인사 및 장기표 씨 등 사회각계각층의 인사 5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축하의 떡 자르기와 이를 시민들과 나눠줌으로써 마무리됐다.
“이제야
전태일에게 부채를 갚은 느낌”
[인터뷰] 전태일 동상 제작자 임옥상
화백
불꽃으로 스러져간 자리 위에 동상으로 다시 태어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청계천이 흐르는 다리 위해
우뚝 서서 팍팍한 생계를 걱정하는 시장 상인들의 숨 가쁜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전태일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는 배경엔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전태일이 분신 사망한 지
35주기를 맞는 올해 전태일 동상을 제작하고 청계천 5, 6가 인도에 동판을 깔아 전태일 거리를 조성한
설치미술가 임옥상 씨도 ‘전태일을 기억하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동상이 올려다
보이는 청계천에서 9일 전태일 거리 준공식에 맞춰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임 씨는 지난
3월부터 사회인사와 시민들의 메시지가 적힌 동판 4000개로 인도를 장식하는 작업을 시작해 전태일 거리를
완성했다.
전태일 거리는 시민들이 조성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는 데 남다른 의미가 있다.
“독지가가 거금을 기부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의 성금으로
전태일 거리를 조성하자는 게 애초의 취지였어요. 일정한 돈을 기부한 시민들이 보내준 메시지를 동판에 적어 넣어
의미가 더 큽니다.”
그러나 임 씨는 “젊은이들에게 전태일 거리를 적극적으로 알리면
열사를 잘 몰랐던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대만큼 많이 홍보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가 만든 전태일 동상은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 다리) 한 복판에 있다. “보통 우리나라 동상은
되도록 높은 위치에 만들어 사람들이 밑에서 우러러보게 하는데, 전태일 동상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눈높이에 맞춰 사람들이 전태일과 바로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이날 만난 전태일은 한 손에 국화꽃을 들고 있었다. “시민들이 동상 주변을 지나다가 간혹 꽃다발을 두고 갑니다.
국화꽃도 우리가 꽂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와서 놓고 갔어요. 이틀 전에 왔을 때도 국화꽃이 있었습니다”라며 그는
사람들이 전태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임 씨는 또한 “전태일 동상을
보면 오른쪽 손바닥은 위를 향하고 왼쪽 손바닥은 바닥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담고 왼손으로
땅을 짚고 있는 것”이라며 “‘천지인’이라는 말이 있듯 전태일이라는 인간의 한 몸이 삼라만상의 모든 기운을
끌어안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기도 했다.
동상 제작 당시엔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남들은 전태일을 투사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노동자이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말 그대로 아름다운 청년이에요. 그래서 동상에서도 투사의 흔적보다는 따뜻한 이미지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전태일 거리를 만든 소감을 묻자 “15년, 아니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광화문 역사 지하 1층에 33인의 위인을 정해
이들의 모습을 장식한 적이 있는데, 33인 중에 전태일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당시 제작을 총괄하는 서울시에서 크게
반발해 결국 포함시키지 못했다”는 게 그가 전한 웃지 못할 과거의 기억이다.
그런 그에게 전태일
거리는 예술적 성취이자 보람이다. “그동안 전태일과 관련한 작업을 제대로 해오지 못하다 이제야 하게 됐습니다.
전태일 거리 조성도 내가 먼저 기념사업회 측에 제안했어요. ‘안 돼도 손해 볼 것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었지요.”
설치미술가 임옥상에게 있어 노동운동가 전태일은 어떤 존재일까.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측은지심이 발달한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는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자기 것으로 껴안고 사랑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임 씨는 전태일 거리를 만든 것에 대해 “부채를 갚았다”고 표현했다. “대학 다닐
때 풍문으로 들어 전태일을 알게 됐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은 목숨을 불살랐는데 나는 뭔가’하는 고민이 생겼고
그 때부터 마음속에 빚이 쌓이기 시작했죠. 그동안 얹혀있던 (열사에 대한) 부채를 이번 거리 조성을 통해 어느
정도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전태일 거리에서 나아가 전태일 구역으로, 더 나아가
전태일 공원으로, 마지막엔 기념관까지 만들었으면 한다”며 기념사업회 측과 적극적으로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태일 거리라는 명칭은 서울시에서 지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 거리를 오가면서
이곳을 전태일 거리로 부르면 자연스럽게 공식명칭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임 씨는 앞으로도 ‘아름다운
청년’과 함께 내일을 살아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