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는 다른 FTA들과 다르다한국 협상단이 1차 협상 초안을 제목만 열거해 공개한 내용을 살펴보자. 이것만 봐도, 이미 알려진 대로 농산물 수입은 물론이고 사업서비스, 금융, 투자, 지적재산권, 보건의료 시장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교역장벽 철폐가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과 '의무이행 부과금지' 조항이며, 이 조항을 도입하자는 미국의 요구는 금융과 의료는 물론이고 일체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규제 철폐 요구를 집약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수행해야 할 산업정책 혹은 사회적 조절 기능이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항들에 대해 합의한다면 경제 영역에서 국가의 존재를 말소시켜 버리게 될 것이다. 가히 신자유주의의 완성판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대기업들이 왜 한미 FTA를 찬성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바로 이런 이유에서 혹자는 한미 FTA를 '제2의 IMF'라고 부르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2의 한일합방'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는 무역과 관련한 관세협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는 산업 전체에 대한 전방연관 효과가 가장 높은 부문, 즉 금융과 서비스 부문의 완전개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며, 그 효과는 미국과의 경제통합에 버금간다. 그래서 한미 FTA는 품목별 관세장벽 폐지에 집중된 한-칠레 FTA, 한-아세안 FTA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현재 추진 중인 한-중-일 FTA, 한-일 FTA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다.전방연관 효과가 높다는 것은 해당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경우 그것이 경제 전체에 연쇄적인 변화를 일으켜 그 영향을 확대재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 부문의 전방연쇄 효과가 크다는 점은 바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거시경제 정책이 금융통화 정책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금융 부문은 사회적인 개입과 조절이 일어나는 영역이기도 하고, 국가경제 전체 차원에서 장기적인 전략적 기획을 할 때 필수적으로 이용되는 정책수단도 이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그런가 하면 서비스 분야 중 '비즈니스 서비스'와 '지식정보 서비스' 분야는 미래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 본질상 사회적 맥락, 문화적 토양 위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서비스, 금융, 투자 부문의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철폐하는 것은 곧 한 국가의 경제주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전략적 국가개입, 즉 산업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고 서비스, 금융, 투자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흐름을 외국자본에 내맡기겠다는 선언이다.특히 서비스 부문(지식, 문화, 교육, 의료, 환경)은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 즉 복지, 사회정의, 분배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새로운 가치창조, 가치의 다양화를 통해 미래의 성장동력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서비스 부문은 시장경쟁의 논리가 통용되기 힘든 영역이며, 시장경쟁의 논리를 적용할 경우 더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대 주류경제학의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조차도 서비스 부문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와 '외부성 효과'로 인해 이 부문에서는 시장경쟁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의 최대치가 항상 사회적 최적 수준을 밑돌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앞으로의 글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논증하겠지만, 현재 협상 중인 한미 FTA는 한국경제의 주권과 지속가능한 내생적 경제성장 전략을 포기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미 FTA는 세계적으로는 유일 단극의 지배 체제와 연관되며, 아시아에서는 대중국 포위전략의 완성판이 될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와 신속기동군제로의 군사전략 전환, 그리고 이를 위해 필수적인 '전략적 유연성' 등을 강행하려는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안보 전략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한미 FTA는 특히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금융허브'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미 FTA를 통해 한국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과 미국자본의 한국 금융시장 장악이 이루어진다면 아시아 차원에서 진행돼 온 독자적인 금융통화 협력의 흐름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정부의 로드맵에 따른다면 '아시아 금융허브'의 일차 목표시장은 채권시장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아시아 개발 채권은행(ADB)'의 창설을 통해 시장의 논리가 아닌 아시아 지역공동체의 논리를 관철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을 배제한 지역협력의 흐름에 대해 집요하게 반대해 왔으며, 각종 새로운 국제기구 창설을 통해 이를 방해해 왔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그런데 만약 미국의 금융자본에 의해 장악된 '아시아 금융허브'가 한국 내에 만들어진다면 아시아 지역협력을 추진해 온 흐름과 충돌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가 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추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질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미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면서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통일한국의 미래에도 부작용 초래그뿐만 아니라 아시아 이같은 금융허브의 등장은 국내 경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이 요구하고 한국 정부가 협정 초안을 통해 이미 수용하기로 결정한 '금융 및 투자'에 관한 조항들은 아시아 경제공동체 추진에 필수적인 국가 간 분업구조의 재편 및 이를 위한 국내 산업구조 재편을 추진할 수 있는 전략적 산업정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막대한 규모의 금융자본이 국내에 유입되어 활개를 칠 수 있는 데 반해, 사회적 조절과 조정, 미래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산업정책의 손발은 완전히 제거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미국에 군사와 안보의 측면에서 종속된 데 이어 경제의 측면에서도 일방적 종속이 완성되는 것이다.또한 한미 FTA는 통일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런 우려는 단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원산지 규정 적용 문제와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 경제통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간에 경제체제의 비교우위론적 분업구조를 넘어선 대안적 경제체제 내지 경제질서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협의, 과감하고도 안정적인 장기투자, 특구를 넘어선 미래 기반산업 중심의 클러스터 정책 등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북한에 잠재적인 성장동력을 만들고 그것을 현실화하기까지는 많은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야 하며, 이에는 남북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아시아 차원의 국제적 노력이 조화를 이루며 결집되어야 한다.그러나 과연 미국자본에 의해 장악된 우리나라의 금융, 투자, 서비스 시장이 막대한 통일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미래 기반산업 중심의 클러스터 구축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할 수 있을까? 이런 조건들이 전제되지 않은 채 추진되는 남북한 경제통합은 북한 경제와 북한 민중의 미래를 외국자본의 단기이윤 추구 논리 앞에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내던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남북한 경제통합으로 인해 발생할 비용은 전적으로 남북한의 민중에게 떠맡겨질 것이다.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그동안 알량한 일반균형연산(CGE) 모델의 추정결과를 내세워, 그것도 그 추정의 근거와 전제들은 공개하지도 않은 채 한미 FTA의 경제적 기대효과를 과대광고 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고 보더라도 한미 FTA의 경제적 기대효과는 여전히 마이너스다.현재 양국의 평균 관세율을 보면 한국이 7.9%인 데 비해 미국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FTA로 한미 양국의 관세장벽이 모두 철폐된다면, 그 순효과는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적자로 나타나는 게 필연적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도 한미 FTA가 한미 양국 정부의 계획대로 체결될 경우 2010년경이 되면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미 미국이 한국에서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올리고 있는 자본수익을 합칠 경우, 2010년경이 되면 미국에 대한 경상수지 적자 규모에서 우리나라는 주요 교역상대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 될 것이다.이와 같은 한미 FTA 비판에 대해 궁색해진 청와대는 한미 FTA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성과로 서비스와 금융 부문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시장이 개방되면 외부충격으로 국내 서비스 및 금융 부문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고도화된다는 논리다.그러나 그러한 경쟁력 강화와 경제구조 고도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이 협상안의 내용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미 FTA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관료들은 물론, 그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그 많은 국책연구소들 가운데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에서는 한국 최고의 싱크탱크라는 삼성경제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이 완강한 침묵의 카르텔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