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풀 테니 대출을 늘려라."(정부)
"비올 때 우산을 뺏는 게 은행업의 본질이다."(은행
관계자)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하라고 종용하지만
돈은 몇 발짝도 못 떼고 은행권 문턱에서 맴돌 뿐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2.5%로 끌어내린 데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후 총액한도대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통화안정증권 중도 매입, 채권시장안정펀드 지원, 국고채
직매입 등으로 무려 21조6000억원을 시중에 공급했다.
이에 따라 은행채, 양도성예금증서(CD), 기업어음(CP)
등으로 소화되는 분위기지만 은행채도 우량ㆍ비우량 은행별로, 기업어음도 신용등급 A1과 기타 어음 간 양극화가 극심하다.
또 금감원과 양해각서(MOU)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매분기별로 중소기업 대출 실적을 할당받았지만 실제 집행에는 몸을
사리는 형편이다. 이러니 `돈맥경화`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면 그 많은 돈이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상당
부분이 금융권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게 시장 분석이다. 20일 현재 머니마켓펀드(MMF)에는 106조6000억원이 몰려 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MMF 증가액이 26조6000억원이었는데 그중 법인 자금이 31조원 늘었으니 개인
자금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라며 "법인 자금 중 대부분이 은행권 자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한은이 RP
매입 방식으로 1조4100억원을 금융권에 공급하면서 받은 금리는 2.62%다. 하루만 맡겨도 3%대 이자를 받을 수 있어 은행 자금은
차라리 MMF로 몰려드는 것이다.
현재 이자가 1.5%에 불과한 한국은행의 자금조정예금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결국
한은에서 풀린 돈이 다시 `곳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3.02%이던 콜금리 역시 19일
현재 1.99%에 불과하다. 그만큼 콜시장에 자금이 넘친다는 얘기다.
이처럼 쥐꼬리만 한 이자라도 좋으니 훨씬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지만 혹시 떼일지 모르는 기업에는 대출을 못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