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직업 창출과 불황 극복 정책을 발표하는 캐빈 러드 총리(데일리텔레그래프). |
| ⓒ 데일리텔레그래프 |
| |
"호주 노동당 정부는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방편으로 호주 전역의 7540개 모든 초등학교를 현대식으로 고치겠다. 도서관과 전교생이 모일 수 있는 대강당을
짓기 위해서 147억 호주달러(이하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2월 3일 오전, 캐빈 러드 호주 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서 밝힌 내용이다. 이 내용을 처음 접한 기자들은
"경제위기 탈출과 초등학교 현대화 작업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러드 총리는 "초등학교 현대화 계획은 노동당 정부가 총선공약으로 내건 '교육혁명(Education
revolution)'과 관계가 있다. 또한 경기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건축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답변했다.
호주의 모든 초등학교 시설을 현대화하고, 중등학교 실습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투입되는 147억 달러는 호주 역사상
교육예산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지금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이런 방식으로 불황 탈출을 꾀하는 나라가
호주 말고 또 있을까?
'초등학교 시설개혁'이 불황탈출의 키워드?
캐빈 러드 총리는 이날 420억 호주달러의 긴급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산지출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리스트를 꼼꼼하게 살펴보니,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빼면 모두
저소득층과 농민을 돕기 위한 긴급 예산지출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 |
|
▲
호주 긴급경기부양책 예산지출 계획 중 저소득층 및 농민대상 예산 |
| ⓒ 윤여문 |
| |
캐빈 러드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갈무리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저소득층과 농민을
국가에서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캐빈 러드 총리는 긴급예산 지출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번 패키지를 '국가 건축과 직업창출 계획'으로 호칭했다. 그는 또한
"이 패키지는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을 상대로 엄청나게 벌어들였던 호주 지하자원 붐이 끝나면서 고사 위기에 빠진
호주경제에 긴급수혈을 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러드 총리는 이어서 "420억 달러가 소요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는 가장 큰 목적은 향후 2년에 걸쳐 9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수많은 국민들의 일자리를 갑작스럽게 빼앗아간 피할 수 없는
경기침체에 백기를 들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웨인 스완 재무장관과 린지 터너 금융장관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마친 러드 총리는 곧바로 이어진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서 "(경기부양책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정부는 전력투구할 것(There's no guarantee
of success but we will throw everything at this)"이라고 전망했다.
"저소득층과 농민, 국가가 아니면 누가
돌보겠나"
그러나 러드 총리의 이런 '결연한 의지'는 바로 야당의 파상공세에 부딪혔다.
야당은 "적자재정과 국가부채 증가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는데, 적어도 성공가능성이 얼마쯤 된다고
답변해야 하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등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에 대해 3일 오후 늦게까지 국회 대정부질문을 쏟아냈다.
지난 12년 동안 집권했던 보수정당 '자유-국민 연립당'은 자신들이 어렵사리 흑자재정 기조를 만들고 국가 부채를
줄여놓았는데 노동당이 집권 1년 만에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특히 피터 코스텔로 전 재무장관은 호주국영 abc-TV <나이트라인>에 출연해 "노동당의 고질병이 1년
만에 도졌다"면서 "왜 빚을 지면서까지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이어서 "러드 총리가 발표한 예산지출 패키지는 호주 역사상 가장 큰 경제 후퇴(Prime Minister
Kevin Rudd's latest spending package is the biggest economic U-turn
in Australia's history)"라고 혹평했다.
말콤 턴불 야당 당수도 2월 4일 대정부질문을 통해서 "저소득 월급생활자와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현금 보너스를
지급하면 당장은 환영을 받겠지만, 결국 그 빚을 어린이들이 성장한 다음에 갚아야 한다"고 비난하면서 "연립당은 하원과
상원의 표결에서 노동당 정부의 무모한 도박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러드 총리의 선택, 도박인가 희망인가
일각에서는 캐빈 러드 총리의 이런 선택을 두고 그의 성장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마 <시드니모닝헤럴드> 칼럼니스트는 한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불우한 성장배경에서
비롯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강한 연민이 이번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11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러드 총리는 <데일리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쓸모없는 존재(I was nerd)였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학생대표를 맡았고
토론그룹 리더로 활동한 수재였다.
지금은 연립당의 한 축인 국민당으로 당명을 바꾼 지방당(Country Party) 소속 당원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집세를 내지 못한 그의 가족들은 차 안에서 잠을 자야하는 극빈한 시절을 보냈다.
러드 총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불행
일들이 사회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하면서, 보수당 출신 아버지를 둔 아들이 진보정당인 노동당에
합류하게 된 속사정을 내비쳤다.
그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말도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라는 말이다.
한편 캐빈 러드 총리는 총선당시 선거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학교들을 방문한 바 있다. 그는 그때 낙후된 공립학교의
수많은 교장들로부터 "현대식 도서관과 전교생이 모일 수 있는 대강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내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교육 총리(Education Prime Minister)'가 되어서, 질 좋은
공교육을 통해 낮은 학력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을 막아내겠다. 그 방책은 모든 학생에게 교육혁명을 통한 기회균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기자회견 직후 러드 총리 지지율 59%
| |
|
▲
러드 총리의 기자회견 직후부터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 판이 실시중인 여론조사에서
5일 오전 현재 응답자의 59%가 러드 총리의 경기부양책에 지지한다고 답했다. |
| ⓒ 시드니모닝헤럴드 |
| |
캐빈 러드 총리의 이런 행보에 대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 판은
러드 총리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긴급여론조사를 실시했다. "420억 경기부양책과 관련하여, 캐빈 러드 총리와 말콤 턴불
야당 당수 중에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것.
여론조사가 계속 진행 중인 5일 오전 현재, 중간 집계의 결과는 러드 총리 지지 59%, 턴불 야당 당수 지지
33%, 잘 모르겠다 8%다.
abc-TV 시사프로그램 '블랙퍼스트'에 출연한 한 정치평론가는 "예상보다 찬성률이 높다"면서 "이번 조치로 혜택을
받는 저소득층과 노동자들의 찬성률이 높고, 세금을 많이 내면서도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유층은 반대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방송 중에 소개된 시청자 이메일 중에는 "노동당 정부는 언제까지 현금 보너스를 이용해서 민심을 얻은 작정인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 돈이 술값과 도박비용으로 사용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적나라한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아침 방송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특히 장기적인 불황으로 위기에 몰린 산업계에서는
가장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채널7>에 출연한 금융전문가 제임스 크레이그는 "이번 조치가 호주 경제를
살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일단은 러드 총리의 선택에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