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요구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임금동결법'이 정말로 추진될 듯한 모양새다.
정부와 재계는 경제위기 발발 이후 공기업과 대기업 임원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임금삭감을 발표하며 모종의 분위기를 만들어왔는데, 급기야 민간기업
노동자들의 임금동결을 법으로 추진하자는 데에 이른 것이다.
17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의에서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네덜란드가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며 "일자리 나누기의 범사회적 확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위기 동안 한시적으로 임금조정법안을 정부에서 제출해달라"고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요청했다.
이 의원은 "의원
입법도 가능하나 노사정 협의가 잘 이루어져야 하니 의원입법은 한계가 있다"며 "총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노사정 협의로 임금조정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총리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에 한승수 국무총리는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법으로 임금동결?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어"물론
임금동결법은 위헌이다. 헌법 제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과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각각 쿠데타 직후인 1961년과 1981년에 국가 차원에서 임금동결을 시행한 바 있으나, 이는 말 그대로
헌법을 파괴한 쿠데타에 의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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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각각 쿠데타 직후인 1961년과 1981년에 국가 차원에서 임금동결을 시행한
바 있으나, 이는 말 그대로 헌법을 파괴한 쿠데타에 의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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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 역시 법으로 강제한 것은
아니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그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다.
1982년의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은 불황과 재정
악화로 위기에 처한 자본 측과, 실업률 및 조직률 하락에 직면한 노동 측이 임금억제와 노동시간 단축 및 고용보장을 교환한 말 그대로
'사회협약'이다. 네덜란드는 수십년의 역사와 수차례 집권경험이 있는 강력한 노동당 및 중앙집중적 산별노조체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와
노동기본권 그리고 50년대 이전부터 유지되어 온 대등한 노사협상의 전통이 있는 나라다.
또한 이 바세나르 협약은 사회적 합의로
추진된 것이고, 노동 측의 '임금가이드라인' 역시 임금인상 자제라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조측의 협조를 의미하는 것이지 개별 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강제로 동결시킨 것은 아니다.
임영일 전 경남대 교수(한국노동운동연구소)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임금을
동결하는 법을 만든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지금이 헌법이 정지된 쿠데타 상황도 아니고 이게 입법이 가능한 거냐"고 지적했다.
정부여당 내 '강제로' 임금동결 공감대이렇게 보면
위헌임에 분명한 '임금동결법'이 현실화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들 법도 한데, 문제는 재계와 한나라당으로부터 정말로 임금동결법을 추진하겠다는
분위기가 보인다는 것.
임금동결법 주장은 이군현 의원이 처음이 아니며, 전날(16일) 같은 당 공성진 최고위원도 "한시적
임금동결법을 당 정책위 차원에서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최고위원회의에서 밝힌 바 있다. "집권여당으로서 한시적 임금동결 법안을 제정함으로서
시간을 줄이고, 그리고 임금을 삭감하는 것을 법으로 규율"하자는 것.
이날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공성진 의원실
관계자는 "이군현 의원이 내일 대정부질의에서 그런 말을 할 것"이라며 "의원입법으로 할 것은 아니고, 정책위 쪽에서 논의를 할 것"이고
"당론으로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 이 의원이 법안을 총리에게 제안하고 총리가 "적극 검토"로 화답한 셈이다.
임금동결법안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측에서 나온 것으로 네덜란드에 대한 언급과 한시적 법안 제정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주장과 일치한다. 따라서 임금동결법안은 특정 의원의 엉뚱한 발상이 아니라 재계의 요구를 배경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의원 입법이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고 당론이나 정부 발의로 법안이 추진되는 것도 실제 임금동결법안이 추진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실 경제위기
이전에도 MB정부에서는 법 제정까지는 아니지만 임금동결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었다. 지난해 7월 정책위의장 출신인 이한구 의원은 전두환 정권
당시의 임금동결을 언급하며 "그때 우리가 취했던 조치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집권여당을 비롯해 보수진영 전반에
'힘으로'라도 임금인상 억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동의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보수언론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중앙일보 허귀식 기자는 '80년대 초 물가高 잡은 전두환 리더' 제하의
기사에서 "80년 '부실 경제'를 인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지상 목표로 내걸고 국민을 설득"했다며 "그의 위기 관리 리더십은
한국 경제가 80년대 초 고비를 넘고 세계 경제의 호황에 편승할 찬스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