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15일 정치권에 전격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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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15일 '대선자금 동시공개'를 여야에 제안함으로써 '정면돌파'를 승부수로 띄웠다. 이는 '정대철 쇼크 벗어나기'와 '정치자금 투명화를 위한 제도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선택한 묘수로 보인다.

특히 노 대통령은 정대철 대표의 굿모닝시티 자금수수사건이 '돼지저금통'과 '노사모' 등으로 상징되는 '노무현식 선거혁명'을 크게 훼손하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문희상 비서실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참여의 자금 풍토가 참여정부이 출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긍지가 우리들한테 있다"며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는 대목에서 우리가 고해성사하듯 국민과 역사 앞에서 밝히고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노 대통령의 제안을 부연설명했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읽힌다.

현재 청와대의 최대 고민은 참여정부 출범 5개월여 만에 정 대표 자금수수사건으로 대선자금 논란에 휩싸인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정대철 쇼크'에서 벗어나는 것은 원활한 하반기 국정운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일단 청와대는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는 정 대표와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희상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 대표 사건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당이나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정 대표 사법처리와 대선자금 공개 분리 방침'을 밝혔다.

특히 문 비서실장이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개인적 비리로 인해서 형을 산다면 그것이 면책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대목에서는 '정 대표가 자금수수와 관련해 개인비리가 있다면 사법처리는 당연하다'는 뉘앙스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노 대통령이 지난 13일 저녁 핵심참모회의에서 정 대표의 대선자금 폭로 발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도 이러한 청와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정 대표의 처신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 8시 20분께 핵심참모들 만나..."국민 양해 구한 다음 제도개혁 추진"

또한 노 대통령은 '정대철 쇼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이를 정치개혁 특히 정치자금 투명화의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15일 기자회견에서 문 비서실장이 전한 바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 논란이 정파간의 소모적 정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정치개혁의 소중한 계기로 승화·발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비서실장도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동시공개' 제안에 대해 "오랫동안 대통령이 생각해온 정치개혁 구상 차원에서 나온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 13일 핵심참모회의에서 "정 대표 사건을 계기로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 때문에 법 위반자를 양산하는 정치자금법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자금법 전면 개정' 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모금총액 한도 제한을 없애는 대신 모금된 돈을 정책개발비 등 생산적인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 제한 규정을 두는 방안을 고려해 보자"고 좀더 구체적인 구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15일 오전 8시 20분께 문희상 비서실장 등 핵심참모들을 불러 "이번 일을 정치개혁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여야가 지난 대선자금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검증을 받아 국민의 양해를 구한 다음 제도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자회견을 지시했다.

15일자 <청와대 브리핑>(95호)은 "노 대통령은 최근의 대선자금 논란을 단순한 정치공방의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며 "지역구도 타파와 함께 정치자금 투명성문제에 대해 여야를 포괄하는 정치권 전반의 공통된 현안으로 인식하고 이에 따른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분석했다.

<청와대 브리핑>은 이어 "노 대통령의 지시로 구성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에서도 정치자금 모금 상한선 폐지 등 정치자금법 현실화를 연구결과로 제시하기도 했다"며 "이번 여야 대선자금 공개 제안은 무엇보다 정치권 모두가 잘못된 과거에 대한 진솔한 자기고백을 통해 새 출발의 전기를 삼자는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동시공개' 제안에 대해 "면피용" 혹은 "물타기"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돼지저금통 사기극에 대해서조차 조금도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을 수 있는지 참으로 뻔뻔스럽다"며 "너무나도 속보이는 호도책이며 물귀신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데 몰려서 하니까 그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제안이 정치개혁 구상 차원에서 나왔다는 청와대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과연 여야가 한국정치 최대의 판도라 상자인 대선자금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느냐다. 현재 민주당은 대선자금 공개를 수용했지만 한나라당은 거부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만 단독으로 공개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여야가 '선민주당 후한나라당'의 방식으로 빅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계속 거부할 경우 민주당이 먼저 공개를 한 다음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