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 지 얼마 됐다고 무신 재신임인교... 말도 안 되는 소리제."

노무현 대통령의 전격적인 '재신임' 발표에 대해 대구시민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앞으로 국가운영에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빛이 역력했다. 특히 전후 과정을 불문하고 이번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가 "성급하고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높아 보였다.

재신임 발표가 있은 후 첫 휴일을 맞은 12일 오후 대구시내 2.28 청소년 공원에서 만난 배준기(56. 상업)씨는 "(노 대통령은) 대통령 감이 아니다"라는 말부터 뱉었다. "솔직히 난 작년에 이회창씨 찍었지만 그래도 노 대통령이 잘 할 줄 알았제. 근데 이게 뭐꼬. 결국 대통령 감이 아닌 거 아니었나."

"재신임 안 해준다. 그걸 왜 해주노"

노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여부에 대해서 배씨는 강하게 손을 저었다. 배씨는 "왜 재신임 하나 안 한다. 말하는 것 보면 너무 가볍다. 그게 문제"라고 나무랐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들른 김정태(37. 만촌동)씨는 '재신임'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서 "임기를 반 정도는 마치고 나서야 재신임이 가능하지 지금은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노 대톨령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 노 대톨령을 지지했다는 김씨는 "개혁적인 성향과 투사적인 이미지에서 강한 리더십을 기대했는데 대통령이 된 후 많이 퇴색된 것 같다"면서 "사실 집권 이후 실망감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의견을 묻자 "무조건 철회돼야 한다"면서 "한 가정의 아버지가 힘들다고 아버지 역할을 하지 않는게 말이 되냐"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노 대통령의 잘못도 있지만 한나라당도 너무 집권 정부에 대해 흠집내기에 몰두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다른 지역과 함께 한나라당 외 다른 정당에도 표를 던져줘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보였다.

"노 대통령, 재신임 철회해야"

특히 작년 대선 투표에서 '노무현'을 찍었던 지지층 중에서 노 대통령을 불신임하겠다는 의견을 보인 시민도 있었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직장인 공봉준(28. 범어4동)씨도 "처음에는 노무현 후보가 경력이나 말에 믿음이 많이 갔었는데 당선된 후 많이 변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공씨는 "한나라당이나 다른 세력들이 대통령을 흔든다 치더라도 거기에 흔들리는 것 자체가 싫다"면서 "지금 마음으로는 재신임 할 마음이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공씨는 "만약 이번 재신임 발표 이후 대톨령이 강하게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면 다시 재신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켜보겠다는 관망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대구시민들도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가 앞으로 국정 전반에 혼란을 가중시킬까 우려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집권 이후 국정운영에 실망스럽지만 기대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호동에 사는 주부 김영자(55)씨는 "어차피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됐으면 잘하든 못하든 끝까지 하는 것이 맞지 않냐"면서 "경제가 어려운데 국정까지 혼란스러우면 안되지 않냐"고 우려했다. 김씨는 이어 "앞으로 노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지는 모르지만 소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아무개(63. 남)씨는 집권 초반에 벌써 정권 자체를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한 회사에서도 과장이나 사장이 바뀌면 인수인계하고 자리잡는데 시간이 필요한데 7개월을 놓고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재신임 마음 없지만, 앞으로 두고 보겠다"

그는 "지금 당장 재신임 한다, 불신임 한다 말하는 것보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 "국민들도 이미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을 더 힘있게 밀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견은 최근 지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사실 대구지역은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지지가 미미했던 지역이었다. 해서 최근까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신은 어느지역보다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반면 향후 국정운영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는 지역 여론도 시사하는 바가 커보인다.

영남일보·대구방송이 공동으로 아이너스리서치에 의뢰해 20세 이상 대구·경북지역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지난 3~4일 이틀동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사 대상자 53.2%가 '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한다'고 밝힌 반면, '앞으로 국정운영을 잘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44.8%로 부정적인 응답 32.3%보다 높게 나왔다.

일단 이번 여론조사가 재신임 발표 이전의 여론조사였다는 점에서 시의성에 문제는 있지만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아직 상존하는 만큼 향후 국정운영에 따라 지역민심의 변화 여지는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정부, 향후 지역민 기대감을 채워줄 것이냐가 관건

대구대 홍덕률(사회학) 교수는 "대구지역 정서가 보수적이면서 안정희구적인 측면이 있는만큼 재신임 정국에서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정권을 바꾸자는 극단적인 여론까지 제기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결국 앞으로 단기적인 처방이 아닌 적극적인 계혁과 정책 추진을 통해 지역민들이 가진 기대감에 호응한다면 노 정부에 대한 지지로까지 끌어낼 수도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