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3G(세대) 이동통신 인터넷 접속카드 시장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 보라텔레콤은 요즘 제품 가격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당초 카드 하나당 80달러가량의 판매가를 생각했지만, 경쟁업체인 화웨이(華爲)가 지난 4월 그 반 정도인 42달러의 가격으로 차이나텔레콤에 90만대의 제품을 납품하면서 계획이 어긋났다. 가격 차이가 발생한 주(主)원인은 생산의 규모. 보라텔레콤의 한 해 생산규모는 100만대 정도이지만, 화웨이는 3000만대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낮추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 것이다. 보라텔레콤의 고영화 중국법인 사장은 '시장 조사를 해보니 화웨이의 생산 규모면 42달러의 가격도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덩치로 무장한 중국 기업의 공세에 한국 기업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중국 기업이 덩치를 급격히 불리고 있다. 중국 정부의 산업진흥정책에 따라 동종(同種) 기업 간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에너지·자원, 기술 분야의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대형화가 가장 빠른 업종은 국영기업이 주도하는 에너지·정유 분야이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1위를 차지한 시노펙(Sinopec·중국석유화공유한회사)은 매출액과 자산 면에서 이미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을 넘어섰다. 이 회사는 최근 서아프리카와 이라크 등지에 유전을 갖고 있는 스위스의 석유개발회사 아닥스(Addax)를 72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계속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다.

철강과 자동차, 항공산업 등에서도 동종 기업 합병이 한창이다. 중국 최대 철강회사인 바오산(寶山)강철은 지난해 바오터우(包頭)강철, 닝보(寧波)강철 등을 흡수 합병하면서 연간 쇳물생산량을 3544만t으로 늘려 포스코(세계 4위·3470만t)를 누르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또 허베이(河北)성의 철강회사를 통합해 탄생한 허베이강철(3328만t), 광시(廣西) 류저우(柳州)강철을 합병한 우한(武漢)강철(2773만t) 등도 포스코의 자리를 위협한다.

중국이 기업 대형화를 서두르는 것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고, 국제경쟁력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산업은 그 어느 산업보다 '규모의 경제'가 기업의 효율을 좌우하는 업종'이라며 '중국 철강업체의 합병을 통한 덩치 불리기는 우리 철강업계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대기업은 기술적으로도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중국 자동차 시장의 중형차 부문에서 판매 순위 1~2위를 다투는 광저우(廣州)혼다의 어코드는 자동차 외판(外板)의 90%를 바오산강철 제품으로 쓰고 있다. 또 국내 르노삼성의 SM5, SM7과 같은 모델인 닛산의 중국산 티에나도 외판이 100% 중국산이다.

자동차 안전의 핵심 재료인 외판은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데다 가격도 비싸 '철강제품의 꽃'으로 통한다. 3~4년 전만 해도 중국 업체는 자동차용 외판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였다. 그러나 바오산강철을 시작으로 안산(鞍山)강철, 우한(武漢)강철 등이 잇달아 국산화에 성공해 지금은 중국산이 중국 내 자동차 외판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자동차산업에선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비야디(比亞適)의 약진이 눈부시다. 비야디는 올 상반기 17만7000대의 차량을 팔아 작년 동기(同期) 대비 176%나 판매가 늘었다. 전체 업계 순위에서는 7위, 중국 토종 브랜드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이 업체는 작년 말 전기자동차도 이미 출시했으며, 올해는 미국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4일 보도했다.

주중(駐中) 한국대사관의 김경종 지경관은 '오늘날 중국의 대기업은 70~9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국내 대기업과 비슷한 존재'라며 '지난 10년간 규모와 기술 면에서 급성장한 중국의 대기업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