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전임자수 대폭 축소…노동계 파업 예고에 이면합의 속출

[CBS산업부 심나리 기자] 노사관계에 대변화를 몰고올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가 1일부터 시행된다.

노동계는 시행 전부터 전임자 수 대폭 축소를 수용할 수 없다며 총공세에 나서는 등 노사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 13년만에 이룬 '무노동-무급여'원칙…이면합의 등으로 퇴색

1일부터 시행되는 타임오프제로 노사간 갈등 양상이 더욱 표면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13년 전인 지난 1997년 노조법 제정 당시에 '무노동-무급여' 원칙에 따라 노조 전임자의 급여 지급 금지가 결정됐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워낙 커 10년 넘게 유명무실화됐었다.

그러나 지난 5월 한국노총이 정부의 타임오프제를 수용하기로 하면서 13년간 유예됐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법안이 이날부터 시행된다. 조합원이 만 명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 노조 전임자를 평균 72% 까지 줄여야해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등이 타임오프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 강성노조 등이 이면합의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에 따르면 A회사의 경우 전임자 외에 사무여직원 1명을 별도로 인정하고 노조에 자동판매기 운영권을 넘긴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B회사는 노사가 합의하면 타임오프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노조 활동도 인정하고 상급단체 파견자 급여도 예전처럼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경총이 지난 5월 24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업종별 주요 기업 3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노조의 위법·편법적 요구가 복수응답을 포함해 6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 면제대상 이외 업무를 유급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18건으로 가장 많았고, 노조간부 활동을 근로시간 면제 범위에서 제외하고 별도로 유급을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16건, 각종 위원회 구성 및 위원 선임과 유급 활동 보장이 14건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85개 사업장에서 현행 유지에 이면합의하거나 유지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기아차노조 "7월은 파업안할 터"…타임오프 장기전

조합원 3만 4백여 명으로, 현대차에 이어 금속노조 내 최대 사업장인 기아차 노조는 지난 25일 65.7%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기아차의 경우 기존 노조 전임자 수를 181명에서 19명으로 줄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차 노조는 타임오프 시행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7월 한 달간은 파업에 돌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아차 노조 관계자는 "싸움이 장기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7월에는 파업에 무리하게 들어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생산직 반장 모임인 생산관리자협의회 등 내부에서 노조 집행부의 정치투쟁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온 것도 쟁대위의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그동안 노사가 전임자 수 보장을 놓고 팽팽히 맞서며 타임오프를 둘러싼 경영계와 노동계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모양새를 보여왔다. 따라서 기아차 노조의 파업 유예로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의 파업 동력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아차 노조의 또 다른 관계자는 "무턱대고 대리전을 치를 경우 (기아차 노조가) 다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기아차 사측에서는 노조 전임자 관련 사항만 따로 떼 특별 단체교섭에서 논의할 것을 노조에 제의하기도 했다. 일단 파업만큼은 자제를 하고 노조 전임자 문제를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자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GM대우 노조가 지난달 29일 파업을 가결했고,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민주노총 산하 160여개 노조도 사측에 법 시행과 상관없이 전임자 수와 처우를 종전대로 보장해달라며 연대파업을 경고한 상태다.

이같은 분위기 때문에 위법임을 알면서도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우려해 노조 요구를 들어주는 사업장도 속속 나오고 있다.

또 민주당 등 야5당 대표와 민주노총은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가 노동기본권의 토대를 허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타임오프제와 관련한 정부 개입을 비판하는 한편 노조법 개정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 정부·재계, 강력대응 방침

노동부는 이날부터 당장 지방노동관서별로 사업장별 시행 여부를 점검해 타임오프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면합의 등 위법행위 발생 시 처벌과 함께 시정조치를 내릴 계획이다.

특히 사측이 타임오프 규정을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을, 노조 측은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주요 기업 노무담당 임원들도 지난달 25일 노조의 불법적 요구에 단호히 대처하기로 결의를 했다. 이들은 특히 '경총 단체교섭 상황점검반'을 공식 출범시키고, 회사별 교섭 상황을 집중 점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기아차 노조가 파업 유예를 선언한 가운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이른바 강경파들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또 이에 대해 정부는 얼마나 강력한 조치를 취할 지에 따라 기나긴 진통 끝에 도입된 타임오프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날 수 있을 전망이다.

한편 지난해 77일간 '옥쇄파업'으로 대립했던 쌍용차 노사는 타임오프 한도에 맞춰 39명이던 전임자를 7명으로 줄이기로 합의했으며 현대중공업과 코레일도 노조 전임자 수 축소에 의견을 모았다. 막바지 교섭을 벌이고 있는 LG 그룹 계열사들도 조만간 합의안을 도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타임오프제란? 회사가 급여를 줄 수 있는 노조 전임자의 규모와 활동 영역를 정하고, 그 외에는 원칙적으로 급여를 주지 않는 제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지난 5월 1일 유급 전임자 수 상한을 0.5~24명으로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