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사내하청 2년, 정규직 간주’ 판결 이후

지난 12일 낮 12시 현대자동차 울산 1공장의 ‘오케이 사이드(불량점검 파트)’. 점심시간 시작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가 잠시 멈추자 차체 조립 전 공정에 퍼져 있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250여명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전국금속노조가 지난달 22일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으로 2년 이상 일한 하청노동자는 현대차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내린 판결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조립 라인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김모씨(31)는 이날 현장에서 노조에 가입했다. 금속노조가 현대차를 상대로 준비 중인 근로자지위 확인, 체불임금 지급 집단소송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 김씨는 “그동안 ‘신차가 들어온다’는 말은 곧 외주화 등으로 비정규직이 잘려나간다는 소리였고 같은 일을 해도 직영 노동자(정규직)와 처우 차이가 너무 나 박탈감을 느껴 왔다”며 “판결 소식을 듣고 자료를 찾아보니 나도 해당된다고 판단돼 참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법 판결로 울산 공장에서 만난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한껏 고무돼 있었다. 현대차 하청노동자 대부분이 입사 2년을 훌쩍 뛰어넘은 6~7년차라 기대는 더욱 컸다. 노조에는 “판결 적용대상에 포함되느냐”는 비정규직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노조 가입률도 크게 늘고 있다.

하청노동자 김모씨(38)는 “8년차지만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신입사원보다 급여가 낮아 150만~170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며 “법원에서 불법파견이 입증된 만큼 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지회가 집단소송을 위한 노조가입운동을 벌인 지난 9일 이후 5일 동안 조합원이 600명 늘어 기존 566명에서 1166명으로 2배가 됐다. 하루에 120명씩 들어온 셈이다. 노조 측은 8월 말까지 조합원수를 2000여명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노조 측은 현대차가 2년이 지난 하청노동자에게 정규직 수준으로 지급하지 않은 체불임금 소송 대상에 현대차 하청 노동자 7000여명 중 4000명이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송액은 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들은 대법 판결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회사 입장을 대변하던 현장관리자(반장·조장)들까지 가입하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업체에서 ‘노조가입률이 너무 높으니 타 업체 수준으로만 좀 맞춰달라’고 하거나 ‘이쪽 라인은 (판결취지에) 해당 안된다’고 종용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는 계속되고 있다. 울산 2공장의 하청노동자 60여명은 최근 ‘투싼’이 단종됨에 따라 사실상 해고 통보인 개인휴업조치를 받았다. 지난 8일로 휴업기간이 끝났지만 이미 돌아갈 현장이 없어져 노동자들은 복귀하지도 못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개인휴업조치를 받은 유모씨(37)는 “현대차에서 7년 일했으니 판결에 따르면 나도 정규직인데 하청업체에서 멋대로 해고통보를 할 수 있느냐”며 “부당해고 소송을 내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하청노동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판결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아직은 알 수 없다”며 “내부적으로 법무팀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