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 도입을 앞두고 최근 양해각서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한 기업 아래 여러 노조가 허용되는 복수노조가 ‘노·노(勞·勞)’ 간의 경쟁과 갈등으로 나타날 경우 노동계의 ‘제 살 깎아먹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공존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다.
양대 노총은 이 양해각서에 동일 사업장 내 경쟁을 지양하고 무노조 사업장에 노조를 만드는 데 주력하자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현재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데 그 안에서 경쟁하기보다 나머지 90%를 조직하는 데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명박 정권이 반노동 정책을 펴는 상황에서 복수노조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시행이 10일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는 기업별로 하나의 노조만 인정하고 있지만 다음달부터는 하나의 기업에 여러 개의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이미 신생 노조 설립 외에도 노·노 간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달에는 이런 움직임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의 관심은 삼성·포스코 등 무노조 사업장에 집중되고 있다. 기존에 회사가 유령노조를 만들어 설립신고를 할 경우 노조 설립이 불가능했지만 이제 자유로운 노조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에버랜드, 포스코건설·제철 등을 중심으로 노조 조직화를 위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노총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삼성 계열사에 노조 조직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무노조 사업장과 어용노조 사업장에서 민주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사측 견제가 심한 상황에서 아직 밝힐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7월 이후에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 등도 조직화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장에서는 복수노조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투쟁 중심의 강성노조에 피로감을 느낀 조합원들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른다. 민주노총 산하 한국발전산업노조 지부가 있는 한국동서발전 내에 복수노조가 설립돼 별도의 단협 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한국남부발전 또한 개별노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반대로 어용노조가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복수노조가 생기는 곳도 있다. 통상임금 지급 기준 문제로 노사갈등을 빚은 전주지역버스 7곳에서는 기존 한국노총 소속 노조원 중 일부가 민주노총을 산하 노조를 만들어 노·노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국지하철노조, 도시철도노조 등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제3노총’에 가입한 노조들도 타 사업장과의 연대를 통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노동계는 복수노조와 함께 추진되는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해선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복수노조가 생기더라도 사측과 교섭할 수 있는 창구를 하나만 두도록 한 제도다. 조합원 과반인 노조에 교섭 대표권을 주고 과반 노조가 없을 경우 단일화 절차를 위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도록 한 것이다. 노동계는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약하는 제도”라고 반발하며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를 포함한 노조법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20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재개정안의 6월 국회 상정을 요구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기업별 복수노조에 제한을 가한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이 낸 개정안까지 포함하면 국회의원 44%가 노조법 개정에 찬성하는 만큼 노조법 재개정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의 표정은 밝지 않다. 사업장에 강성노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노조법 재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 내용을 담은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제도가 폐지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복수노조는 국제노동기구(ILO)가 11차례나 시행을 권고할 만큼 선진적 제도”라며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경쟁과 책임의 노사관계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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