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은행 복수노조 추진위원장인 박인욱(가명, 38) 차장은 지난 1년간 "기존 노조와 전혀 다른 새로운 노조를 만들겠다"며 노조 설립 준비를 해왔다. 박 차장은 틈날 때마다 고용노동부를 오가며 복수노조 설립 신고 절차와 방법을 공부하고 꼼꼼히 챙겼다.

박 차장은 복수노조가 도입된 지난 1일 설립 신고서를 제출할 계획이었지만, 좀 더 철저히 준비하기 위해 접수 시기를 10일 정도 늦췄다. 기존 노조가 1만여 명임을 감안, 50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전략을 짜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었다.

그는 지난 4일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식을 접했다. 은행에서 박 차장을 해외로 발령을 낸 것이다. 박 차장이 발령난 곳은 중국의 작은 도시로 지점 설립조차 안된 곳이다. 은행에서 제일 고생한다는 '신규점포 개설멤버'로 가는 것이었다. 이 은행은 8일 대규모 정기 인사를 낼 예정인데, 며칠 앞서 박 차장 인사만 따로 냈다.

인사 소식에 A은행 복수노조 추진위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은 박 차장 인사를 보복성 인사라 규정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문제없음"뿐 이었다.

은행 측에선 이미 박 차장 인사 문제를 준법지원팀과 법무지원팀을 통해 체크한 상태였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결론도 내렸다. A은행 관계자는 "박 차장이 이번에 옮길 때가 됐고, 평소에 인사 고과가 좋아 해외 지점으로 발령을 냈다"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차장은 "은행에서 복수노조를 막으려고 보복성 인사를 낸 것 같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기가 찬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복수노조 도입 과정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측에서 노조 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인사조치 등 지능적인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7일 현재 복수노조를 신청한 사업장은 대우증권, KB국민은행, 농협중앙회, 발전 3사(남부, 서부, 남동) 등 144개. 이들 사업장에서 복수노조 설립을 준비했던 사람들도 회사 측의 유형, 무형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일 고용부에 설립 신청한 B기업 복수노조 관계자는 "복수노조 신청 후엔 회사에서 인사 조치를 내기 힘들다. 만일 그럴 경우 부당 노동행위로 간주해 시정 명령을 받을 수 있다"며 "혹시 모를 인사 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극비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직원 중 복수노조 준비에 참여했던 직원들은 성과가 저조한 사람들만 모아 놓는 특별 부서로 발령이 났다"고 덧붙였다.

전윤배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복수노조 도입과 맞물려 사측과 기존노조의 압박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며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는 인사는 우리가 나설 수 없지만, 사측이 노골적으로 압박해온다면 정부도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