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이병철 회장에 의해 시작된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에 균열이 생겼다. 지난 1일부터 복수노조가 합법화 되면서 '삼성노조' 설립이 본격화 된 것.

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는 삼성노조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그동안 삼성이 노조 건설을 막기 위해 '알박기'식으로 세운 '유령노조', '페이퍼노조'가 아닌 '민주노조'가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호텔신라, 에스원, 삼성중공업, 삼성메디슨, 삼성정밀화학, 삼성생명보험, 삼성증권 등의 계열사에 노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이들은 대부분 이름만 있고 아무런 활동이 없었던 사실상 유령노조였다.

이날 총회에는 삼성 에버랜드 소속 4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노조 규약을 결정하고 박원우 초대 위원장을 선출했다. 총회 참가자 4명은 모두 에버랜드 소속이지만 이들이 이날 설립을 결정한 노조는 '에버랜드 노조'가 아닌 '삼성노조'였다.

박 위원장은 그 이유에 관해 "삼성노조는 기업노조가 아닌 초기업단위 노조로 건설된다"며 "다른 계열사에도 노조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들이 스스로 나서서 노조를 만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삼성노조를 세워 문호를 열어 놓으면 보다 많은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노조는 삼성의 각 계열사와 협력업체, 하청업체 등 삼성 관련 업종에 있는 모든 직종이 가입대상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또한 가입이 가능하다.

"삼성 무노조경영이 끝나는 역사적 순간"

노조설립에 앞장 서 온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1977년 제일제당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34년 만에 삼성에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노동조합이 들어선다"며 "이병철 창업주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노조경영이 끝나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96년 이천전자와 삼성전기 통합 과정에서 해고된 이후 삼성일반노조를 세우고 삼성에서의 노조 조직을 위해 노력해 왔다. 삼성일반노조는 법외 노조로 제도적 인정은 받지 못하지만 이날 건설된 삼성노조와 함께 지속적인 연대 활동을 펼치기로 했으며 김 위원장은 삼성노조의 상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날 창립총회에 내빈으로 참석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축사에서 "80만 민주노총 조합원 모두에게 자랑스럽고 기쁜 날"이라며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을 얻기 위해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게 안타깝다, 오늘 용기를 내어 앞장 서 나간 4명의 발걸음이 건강한 노사관계를 만들고 20만 삼성노동자의 희망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를 마친 삼성노조 조합원들은 13일 오전 10시 정부 과천청사 고용노동부를 찾아 설립신고를 할 예정이다.

"교섭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활동으로 조직확대 할 것"

▲ 총회를 진행 중인 박원우 위원장과 조합원들. ⓒ 최지용 삼성노조

삼성노조 설립총회가 끝난 후 인터뷰를 위해 현장에서 만난 박원우 위원장, 조장희 부위원장, 김영태, 백승진 4명의 노조원들은 모두 에버랜드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회사의 탄압과 공작에 두려움은 가지고 있었지만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는 결의만큼은 높았다.

다음은 그들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얼마나 준비했고 노조를 세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박원우 위원장 : "대략 3년 전부터 준비했지만 그 이전부터 노조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삼성에는 노사협의회가 있는데 구조적으로 한계가 크다. 회사 측에서 노동자에 불이익을 줘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으니 그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 삼성이 그동안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을 동원해 왔다. 이 일에 나서면서 받은 불이익은 없었나?

조장희 부위원장 : "지난해 1월 노동조합을 세우겠다는 공지를 낸 이후 관심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노조를 세워본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 노동계 선배들을 만나 준비를 해야 했다. 노동법을 배우고 간부로서 자세, 민주노조의 역사를 배우며 준비했는데 이런 과정을 모두 숨어서 해야 했다. 합법적이고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으려는 것뿐인데, 이걸 왜 회사 몰래 숨어서 감추며 해야 하나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김영태 조합원 : "올해로 근무한 지 13년차가 되지만 아직 주임이다. 정상적으로 진급했다면 과장 정도가 돼야 하지만 노조를 세우는 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이 돌아왔다. 하지만 노조를 세우는 건 그런 개인의 불이익 때문은 아니다. 우리 회사는 40대 후반이면 모두 나갈 생각을 한다. 58세까지 법적으로 정년이 보장돼 있는데 왜 그래야 하나?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

- 복수노조 시행 전, 삼성 에버랜드에 다른 노조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박 위원장 : "우리가 창립총회를 열고 노동부에 설립신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먼저 신고를 한 그쪽 노조에서는 회사 측과 교섭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그 노조와 이뤄지면 우리는 2년 동안 회사와 교섭을 할 수가 없다. 1일부터 시행된 복수노조법 시행령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노조법 개정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또 그 사이에 노조가 할 수 있는 게 교섭만 있는 것은 아니니 다른 활동을 통해 조직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 복수노조가 생기면서 에버랜드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에도 노조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차별화 전략을 가지고 있나?

박 위원장 : "조합마다 특성이 다를 것이다. 우리의 답은 간단하다. 어느 노조가 더 진정성을 가지고 노동자 권익을 위해서 일 할 수 있느냐를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역량은 삼성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맞춰 조직을 확대하고 다양한 사업을 펼쳐 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