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재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정유사의 기름값 및 통신사 요금 인하를 시작으로 최근 빵사업·수입차 등에 대해서도 반강제적인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대기업의 이익공유제 도입, 순환출자 금지, 출총제 부활, 재벌세 도입 등 기업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정부의 기업 옥죄기가 한창인 가운에 대기업 회장들은 줄줄이 법원을 드나들고 있다. 검찰 수사를 받은 이들 대기업 회장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배임 및 횡령이 대다수다.
이들이 개인 이익을 위해 회사 계열사나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것. 재계 일각선 검찰과 정치권이 최근 지나친 ´기업 배싱(bashing·때리기)´을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아무리 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을 내놓고, 인력채용을 확대하고,
투자를 늘린다고 해도 정치권의 압박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면서 "주요 대기업 회장들이 현재 줄줄이 공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물론 기업들도 투명한
윤리경영을 해야 당연하고, 법을 어겼을때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기름값 강제 인하, 중소기업 업종 침해 금지, 검찰의 경영진 줄소환 등으로 회사경영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 현 정권이 강조하던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친기업)´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묘하네" 이후 소비자 체감 효과는? 지난해 1월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이 나온 이후 정유사들은 4월부터 3개월간 기름값 100원 할인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감수했다.
그러나 1년여가 흐른 2월 현재 휘발유 가격은 ℓ당 2천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정부는 정유사 압박 이후 알뜰주유소 개점 등의 후속조치를 내놨지만 실효성은 입증되지 않고 있다.
산유국들의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강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국내 기름값에 붙는 50%에 달하는 세금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유류세는 정유사의 세전공급가격에 붙는 교통에너지 환경세·교육세·주행세·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을 말하는 것으로 정유사 공급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정유사들의 목을 옥죄면서도 정작 유류세 인하는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조차 지난해 기업이 손실을 감수했으니, 이제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 말 한마디에 ´빵집 닫고, 차 수입 접고´ "재벌은 취미로 할지 모르지만 빵집을 하는 사람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로 연초부터 카페·베이커리 사업에 손댔던 대기업 2·3세들이 움찔했다.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에도 끄떡않던 재벌들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 사장이 운영하는
호텔신라는 커피·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를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호텔신라는
홈플러스와 함께 만든 제빵업체 ´아제 블랑제리´ 지분도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도 구내 카페인 ´오젠´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LG그룹 방계 구자학 회장이 운영하는 아워홈도 순대·청국장 등 소매시장에서 철수한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외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도 베이커리 업계에서 철수키로 했다.
재벌가의 빵집 철수 압박은 수입차 시장으로 확대됐다.
대기업이 수입차 판매 사업 사업에 진출하면서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는 비판 여론에 떠밀려 두산그룹은 계열사 DFMS를 통해 진행해온 혼다와 재규어·랜드로버 딜러사업 철수키로 결정했다.
두산그룹의 수입차 사업 철수 소식 이후 수입차 딜러사업을 펼치고 있는 대기업들은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수입차 딜러 사업을 펼치는 대기업은 효성, 참존, LS, GS, 코오롱, KCC 등이 있다.
효성은
메르세데스벤츠와 렉서스 딜러인 더클래스 효성과 더프리미엄 효성을 운영하고 있다. 참존은 아우디와 벤틀리를, LS네트웍스는 도요타를 각각 운영 중이다. 또 GS는 렉서스, 코오롱은 BMW, KCC는 혼다와 벤츠 딜러 사업을 하고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진 줄줄이 법원행 대검 중수부는 지난 25일 서울 도곡동 하이마트 본사와 선종구 회장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이 보유한 회사 지분을 자녀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세금 수백억원을 포탈한 혐의다. 검찰은 선 회장 등 경영진이 1천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21일 법원은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이 외에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등에 대한 공판이 줄줄이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서부지법은 1천400억원대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모친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지난 16일 열릴 예정이었던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공판은 오는 3월 27일로
연기됐다.
앞서 지난 1월 5일 예정됐던 박찬구 회장에 대한 공판은 금호석유화학 측의 연기 신청에 따라 2월 16일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당초 예정됐던 공판은 법원의 인사 이동에 따라 내달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2009년 6월
대우건설이 헐값 매각될 것이라는 내부 정보를 이용,
금호산업 지분을 미리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손실을 피한 혐의 등으로 박 회장을 기소한 바 있다.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선고공판도 연기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오는 23일 예정됐던 김 회장의 선고공판을 미루고 오는 3월 22일 변론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김승연 회장 등은 회사자금 3천200억원을 위장계열사 13곳의 빚을 갚기 위해 부당으로 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임직원과 친인척
이름의 계좌 382개 등 차명 계좌나 채권,
주식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거액의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구속기소) 그룹 수석부회장 측은 이달 초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 등에 대해 오는 3월 2일 첫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정치권 ´재벌개혁´ 포퓰리즘 구호 우려 최근 민주통합당이 재벌세 도입을 검토하고, 10대 재벌의 출총제 부활을 골자로 하는 재벌개혁을 논의중이다. 한나라당도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개혁에 나서겠다고 대외적으로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단체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연초부터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내놓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재계에서는 올해 투자와 고용 확대를 다짐했는데 정치권은 대기업 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정치권들이 내놓는 정책들이 현실화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게 뻔하고 재계의 사기가 곤두박질 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출총제는 경제력 집중 억제책의 하나로 만들어진 후 개정과 폐지, 부활 등의 과정을 거쳤고, 3년 전에는 효과가 없다고 해서 없어졌다"면서 "출총제는 그 취지를 떠나 기업활동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므로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선거 때마다 대기업을 적대 세력으로 보고 양극화의 주범으로 모는 문제가 또 다시 재발되고 있다"면서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일변도 정책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전혀 안될뿐더러 최근에는 재벌 정책의 일관성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EBN = 손병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