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촌 간 경영권 승계’.

경제민주화 등으로 어수선한 재계에 모처럼 들려온 LS그룹발(發) 미담 사례다. LS그룹은 올해부터 구자홍 회장 체제에서 그의 사촌동생인 구자열 회장(60) 체제로 바뀐다고 공식 발표했다.

LS그룹 관계자는 “원래는 구자홍 회장이 지난해 물려주려 했으나 구자열 회장이 1년만 더 하시라고 강력히 요청해 올 초 승계가 이뤄지게 됐다. 그만큼 서로 믿음이 강하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LS그룹은 실적도 좋다. 2003년 LG그룹에서 분가한 LS그룹은 지난 10년간 맏형 격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장남 구자홍 회장의 지휘 아래 자산과 매출이 모두 3배 이상 늘어나며 지난해 기준 재계 13위를 기록할 정도로 탄탄한 성장세를 보였다.

새로 수장에 오른 구자열 회장은 LS그룹 창업주 중 한 명인 故 구평회 E1 명예회장 장남으로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이후 우리투자증권(당시 LG투자증권) 국제부문 총괄임원으로 일하면서 회계와 국제금융에 대한 식견을 높였다. 2003년 계열분리 시점부터는 그룹의 주력계열사인 LS전선을 주로 맡아왔다.

그룹 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구자열 회장이 차기 회장감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았다. LS전선을 이끌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 투입될 당시인 2003년만 해도 LS전선은 세계 전선업계 10위였다. 하지만 이제 LS전선은 세계 ‘빅3’ 반열에 오를 정도로 성장했다. 2008년 미국 전선회사인 수페리어에식스와 2009년 중국의 홍치전선을 차례로 인수하며 외형 성장을 한 건 기본. 해외 업체들의 사실상 독과점 분야였던 해저 케이블 사업에 과감히 도전, 2009년 국내 업체 중 최초로 진도~제주 간 해저 케이블 수주에 성공하면서 세계 전선 시장의 판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카타르 석유공사가 발주한 해저 전력 케이블 사업을 수주해 ‘국내용’이란 오명도 걷어냈다.

LS전선 세계 3위 회사로 이끌어

류재욱 네모파트너즈 총괄사장은 “2000년대 들어 경쟁 기업들이 금융, 건설 등 비주력 분야에 인수합병(M&A) 방식으로 뛰어들 때 전선, 산전 등 핵심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투자를 강화해 글로벌 금융위기, 재정위기에서도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LS전선, LS엠트론의 매출 증가세가 그 증거”라며 치켜세웠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건 LG가(家) 특유의 ‘정중동’ 가풍과는 차별화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다. 선대 창업주들과 달리 그는 특유의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영어 이름을 신대륙을 개척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에서 따온 ‘크리스토퍼 구(Koo)’라고 쓰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의 평생 취미인 자전거와 관련한 일화는 이런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4살 때부터 즐겨 탔다는 자전거 때문에 한번은 큰일 날 뻔했다. 고2 때 동생(구자용 E1 회장)과 자전거를 타다 택시와 충돌해 머리뼈가 함몰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던 것. 6시간의 대수술을 받은 후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당시 부친은 자전거 금지령을 내렸지만 구 회장은 가족들 걱정을 뒤로하고 몰래 다시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로 해발 3000m가 넘는 알프스 산을 넘는다든지, 독일~이탈리아 650㎞ 완주 등 극한의 레이스에 도전해 결국 부친도 두 손 들었다는 전언. 최근엔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직에 재선임됐을 정도로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그의 성격은 재계에 유명하다.

자전거 소매업 골목상권 침해 논란 　

‘아름다운 승계’로 시작이 좋았지만 앞에 탄탄대로만 놓인 건 아니다.

LS전선 회장일 때와 그룹 회장일 때는 또 다르다. 지난해 LS그룹 매출은 약 29조원으로 2011년과 엇비슷하다. 증권가에서는 올해도 그룹 매출이 30조원으로 성장률 정체 현상을 빚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부 증권사에선 지주회사인 LS의 목표주가도 낮췄다.

범수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LS그룹의 해외 실적 수주는 증가세지만 선박, 자동차, 건설 등 국내 전방 산업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덩달아 올해 국내 실적도 둔화할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LS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제시하라’는 과제에 경제민주화 시대에 걸맞게 그룹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하는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LS그룹은 주로 B2B(기업 대 기업) 사업을 하지만 계열사 LS네트웍스(옛 국제상사)를 통해서는 프로스펙스, 몽벨, 도요타자동차 등 유통사업도 조금씩 범위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이런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계열사 LS네트웍스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자전거 유통업(바이클로)이 대표적이다. 국산 최고급 자전거 제작, 유통 선진화 등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일부 소매업자들의 골목상권 침해 제기로 소매업 철수를 선언한 게 단적인 예다.

그의 데뷔전이라 할 수 있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이런 위기감이 읽힌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도 커진다. 지금까진 기반을 구축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성장의 시기였다면, 이제 경영체질과 조직문화를 갖춰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할 때”라고 피력한 것. 새로운 화두로 구 회장은 ‘저성장 기조 극복을 위한 경영체질 개선, 지속적인 신성장동력 발굴, 글로벌 시장 확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 준수’란 4가지를 제시했다.

더불어 구 회장은 차세대 먹거리로 LS전선이 국내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초전도 케이블(전기저항이 0인 초전도체를 사용해 많은 양의 전기를 손실 없이 멀리 보낼 수 있는 전선), 차세대 송·배전시스템(T&D), 금속 관련 신소재, 신재생에너지 등을 선정하고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중국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건 다른 그룹 회장과 다를 바 없다. 지난해 말에는 오영호 KOTRA 사장의 최근 저서 ‘미래 중국과 통하라’를 그룹 주요 임원들과 중국 담당 임원들에게 별도로 선물하기도 했을 정도다. 책은 한중 양국 기업이 중국 내수시장에서 협력해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시장을 공동으로 개척하는 ‘Made WITH China’ 모델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구 회장은 “중국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 앞으로의 중국 시장에 대한 가능성과 전망을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며 직원들을 독려하는 중이다.

LS그룹은

LG家 具씨 ‘태평두(泰平斗)’ 3형제가 분가해 설립

LS그룹은 LG그룹 故 구인회 창업자의 6형제 가운데 넷째, 다섯째, 여섯째인 태회·평회·두회, 이른바 ‘태평두(泰平斗)’ 세 형제가 2003년에 분가한 회사다. 계열분리 후 자산과 매출이 3배 이상 성장하며 재계 13위(지난해 매출 29조원)에 올랐다.

3형제의 자손들이 지주사 지분 30% 이상, 계열사인 LS전선, LS산전, LS-니꼬(Nikko)동제련, LS엠트론 등의 지분을 나눠 갖고 때에 따라 계열사를 오가며 경영하는 ‘사촌 간 공동경영’이란 독특한 전통을 자랑한다. 지금도 구자홍 회장, 구자열 회장 등 사촌형제 8명이 매달 첫째 주 금요일에 경영 현안을 논의하는 8인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그룹 회장 승계 외에도 구자엽 산전 사업부문 회장이 전선 사업부문 회장을, 구자용 E1 회장이 E1 사업부문 회장을, 구자균 LS산전 부회장이 산전 사업부문 부회장을 각각 맡는 식의 변화가 있었다. 구자철 한성 회장은 한성의 모기업인 예스코 회장으로, 구자은 사장은 LS전선 대표이사 CEO에 선임됐다.

그룹 관계자는 “불투명한 대외 경기에 대비하기 위해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인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