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작품엔 과학이 숨쉰다

마리부인, 만돌린을 든 여인, 앉아있는 여인(왼쪽부터). 세기의 거장 피카소는 위대한 예술가로 유명하지만 과학자 입장에 서도 새로운 탐구 대상이다. 피카소는 20세기 과학혁명의 중심에서 기하학, 물리학 등에 심취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과학적 지식이 피 카소의 작품을 바꿔나가게 됐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피카소 시대의 과학=피카소는 프랭세라는 아마추어 과학 자와 친한 사이였다. 프랭세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닌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심취했다. 또 프랑스 과학자 푸앙카레의 ‘과학과 가설’과 같은 책을 즐겨 있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한 두 직선이 절대로 만날 수 없지만 비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직선 2개가 만날 수 있다. 이는 100% 아주 평평한 공간이 실제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약간씩 구부러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클리드 공간 외의 다른 공간들이 존 재한다는 푸앙카레의 주장에 매료된 프랭세는 독학으로 터득한 새 로운 과학이론을 피카소를 비롯한 전위 예술가에게 강의했다. 피카 소는 이러한 과학 강의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체주의와 과학혁명=피카소는 입체주의의 대표적인 작 가다. ‘만돌린을 든 여인’(1910년작)과 같은 작품들은 종이를 오려붙 인 듯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비둘기’(1912년작)와 같은 작 품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대상을 한면에서 보지 않고 앞면, 옆면, 뒷면 등 여러 방향에 서 관찰해 대상의 실체를 재현해내는 작업이다. 3차원에서 관찰한 각각의 면을 해체해 평면에 배치한 뒤 입방체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 다. ◇하나의 화폭에 여러가지 시점(다시점)을 넣는 이유는 그 사물을 가장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사 람의 코는 옆에서 볼 때 코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다. 피카소는 작 품에서 얼굴은 정면을 보더라도 코는 옆에서 본 모습을 자주 그려넣 었다. ‘거울 앞의 잠자는 여인’(1932년작)은 측면과 정면에서 바라본 얼굴 모습이 함께 담겨있다. 또 왼쪽 가슴은 위에서 본 모양, 오른쪽 가슴은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양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과 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 진리를 탐구하듯이 피카소는 사물의 겉모습이 아닌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2차원 평면에서 6개의 사각형을 이어접으면 3차원 입방체가 된다(그림 왼쪽). 같은 원리로 4차원 입방체를 공간에 펼치면 3차원 십자가 모양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4차원 세계를 보지못하지만 3차원에 비친 모습으로 이를 유추할 수 있다(오른쪽). 4차원 세계와 피카소=아인슈타인은 3차원 공간에 시간을 추 가해 4차원 세계를 만들었다. 4차원에서 공간은 규격화된 것이 아니 다. 3차원 공간이 찌그러질 수도 있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시 간이 뒤로 갈 수도 있다.   피카소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직접 공부했다는 기록은 없 지만 놀랍게도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의식이 녹아있다. 피카소 그림 의 많은 인물들이 둥근 입체를 띠지 않고 납작하게 찌그러진 것은 바로 이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세악사’(1921년작)와 같은 작품도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와 기타, 피리 등 악기가 완전히 평면인 상태 이다. 피카소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1906~1907년작)에서도 여인들은 납작하게 찌그러져있다.   ‘마라부인’(1937년작)의 경우 얼굴의 눈 속에 또다른 눈이 있다. 이 런 모습은 4차원의 3차원 투시도를 암시한 작품이다.   한편 X레이의 발전도 피카소에게 영향을 미쳤다. 의사들은 수술을 하지 않고도 X레이로 사람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이것은 그림에서 내부·외부의 구분을 없애게 했다. ‘아비뇽의 처녀들’의 경 우 여인들이 들어올린 커튼이 다른 여인의 몸에 휘감기면서 배경과 인물이 구분되지 않는다.   아비뇽의 처녀들, 세악사, 우는 여인(위부터).